엄마의 완성 / 구병모 / 작품분석 / 2025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1. 읽은 소감
구병모가 누구였더라? 언젠가 구병모의 작품을 읽은 것 같은데 작품명은 떠오르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가 앞 장의 사진을 보니 젊은 사람은 아니다. 하긴 그러니까 이런 작품이 완성되었겠지. 이 소설은 갱년기의 여자, 즉 폐경을 앞둔 엄마를 둔 딸의 심정이 자세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읽는 동안 감탄사가 나올 정도다.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갖게 되는 생각이 있다. 어떤 작품이 좋은 소설인가. 글쎄다. 거기에 똑 떨어지는 정답은 없겠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두 번째 읽었을 때 더 좋은 작품이 좋은 소설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중편에 가깝다. 그래서 작품보다 읽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든다. 그런데 자꾸만 아쉽다. 내가 아쉬운 점은 작품에 완성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엄마가 살아 계실 때 이 작품을 접하지 못한 아쉬움이다. 물론 우리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이 작품이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때 이걸 읽었다면 남자인 나도 우리 엄마의 폐경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아, 맞다. 아내가 있었지). 그리고 이건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폐경’을 ‘완경’이라고 바꾸자고 했던 적이 있었다. 다들 그렇게 하자는 분위기로 흘러갔으나 의학 용어는 고쳐지지 않았고 폐경을 완경이라고 쓴 간호학과의 학생이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보며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의 장점은 잘 쓴 작품이 으레 그렇듯 섬세한 심리 묘사가 압권이다.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이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읽는 맛이 난다. 하지만 처음에는 장문에 당황했다. 왜 문장을 이렇게 길게 썼을까. 작가의 의도였겠으나 불편했다. 두 번째 장점은 구병모 작가는 간단한 에피소드를 길게 만드는 재주와 그걸 재미있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이렇게 세밀하게 오밀조밀 만들 수 있는 것도 대단한 필력이다. 이 소설 화자의 독백을 들으며 화자 엄마의 행동과 심리를 생각했다. 화자의 엄마는 어떤 심정일까? 그리고 화자 엄마는 왜 이런 남자 친구를 만났을까?
2. 서사
(1) 엄마는 아빠의 좋은 점 세 가지를 꺼냈다. 집으로 들어온 벌레를 잡아주고, 전등이나 수도를 수리하고, 반찬 투정이 없는 점이었다. 하지만 현재 엄마의 남자 친구인 박 씨는 그렇지 않았다. 연하의 그는 그런 점이 전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동네 중고 앱에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엄마에게 말해줬다. 엄마는 자신과 병원에 함께 가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엄마에게 병원에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지금 그게 없어.
(2) 병원에서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폐경될 수 있는 나이였는데 나는 이까짓 일로 같이 온 게 후회스러웠다. 엄마와 병원에 오기 위해 선배에게 월차까지 부탁한 것이다. 엄마는 예진실에서 간호사와 생리 주기에 대해 말했다. 주기가 칼 같았던 엄마가 최근 생리가 불규칙했다고 얘기하자 간호사가 그게 갱년기 증상일지 모른다고 답변했다. 혹시 임신 가능성은 없는지 테스트를 해보자는 간호사의 얘기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3) 검사가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간호사에게 소변검사만이라도 미리 알고 싶다고 부탁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예약 없이 온 것이라 차례 맞춰 호명하고 선생님께서 결과를 얘기해줄 거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새치기는 엄마가 예전에 했던 행동들이었다. 나도 예전에 차례를 지키지 않은 사람을 보며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은행에서 우량 고객을 나보다 먼저 처리해 줬을 때 협찬처의 옷이 망가졌던 기억이 났다. 결과를 기다리며 엄마와 나는 임신은 아닐 거라며 얘기했지만 속마음은 불안했다. 나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 임신과 관련한 동영상을 시청하며 남자 친구와의 일을 떠올렸다. 여관에서 섹스 후 남자 친구가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을 때 반박하지 않았던 것이 자꾸 기억에 남았다.
(4) 의사는 음성이라고, 임신하지 않았다고 결과를 알려줬다. 갱년기와 관련한 호르몬제를 맞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고 엄마는 검사대에 올라갔다. 검사대는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생각했다. 혹시 실습용은 아닐까. 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들었을 때 강사가 엄마와 같은 나이란 것을 알게 되고 엄마를 위한 화장품을 샀다. 그걸 바른 후 엄마의 얼굴이 달라졌다고 느꼈으나 중요한 것은 외모 문제가 아니었다. 검진을 끝낸 의사는 엄마가 생리를 끝낼 시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5) 엄마와 나는 병원에서 나와 엄마의 남자 친구가 기다리는 무한 리필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서른여덟 살의 박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19,800원의 고깃집은 인사를 나눌 분위기가 아니었으나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내가 불판에 고기를 구우면 박 씨는 우리는 없는 사람처럼 고기를 먹어 치웠다. 엄마는 다른 걸 먹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건 곧 추가 요금을 의미했다. 나는 엄마에게 밥값을 계산하겠다고 말했으나 여전히 반지하 방을 벗어나지 못한 나는 곤궁한 생활을 걱정해야 했다.
(6) 술에 취한 박 씨를 엄마 집으로 데려와 거실 카펫에 눕혔다. 박 씨의 외투와 가방을 안방 옷걸이에 걸기 위해 엄마를 따라 들어왔을 때 세 개의 형광등 중에 한 개가 켜지지 않았다. 세 개 중에 아직 두 개가 남았다며 엄마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무릎이 좋지 않은 엄마가 형광등을 갈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두 개의 형광등 중 하나가 깜빡거렸을 때 나는 서둘러 엄마의 집을 빠져나왔다.
(7)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주기 위한 ‘완경 선물 세트’를 검색했다. 거기에는 갱년기 여성을 위한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아직도 계약직 어시스턴트인 나는 받는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 교통비와 그 외의 경비를 절약해 엄마에게 완경 선물 세트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8) 검색어 알고리즘 때문에 SNS나 웹 사이트에 들어갈 때마다 갱년기 영양제 광고가 떴다. 완경을 맞이한 엄마에게 인생 2막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도 보였다. 생리가 없어지고 몸이 늙고 우울증을 비롯한 신체의 고통이 늘어나는 사람에게 축하는 보내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다녀간 뒤로 여태 소식이 없다. 나는 남자 친구를 떠올렸고 임신과 관련한 소식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수술비를 반반씩 부담하자고 하면 그쪽은 어떻게 나올까.
(9) 사무실에 출근하자 사장은 협력처에 가서 사과하라고 지시했다. 담당은 내가 아니었지만 일단 나는 사무실의 막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과하기 위해 뛰쳐나가는 길에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혈액검사 결과지를 사진 찍어서 보냈는데 수치가 모두 기준범위라고 했다. 축하한다는 답장을 보내며 형광등 상태를 물었다. 엄마는 동네 앱을 통해 사람을 구해 형광등을 갈았다고 대답했다. 마트에 형광등 재고가 하나밖에 없어 죽은 것만 갈아주고 계속 깜빡이는 건 뺐다고 했다. 그래서 여전히 두 개란 문자가 왔다. 박 씨는 뭘 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건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내가 얼마나 엄마 몸 밖의 타인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엄마의 완경은 아직 오지 않았고 환한 불빛을 발하는 불빛은 아직 두 개가 남아 있었다.
3.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들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으며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아들만 사형제를 둔 우리 엄마는 완경이 되었을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사려 깊지 못했고 풋내기였던 나를 반성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P97
“재작년 대학에서 초청한 작가의 강연을 듣고 온 어느 날, 그 스타 에세이스트가 내 엄마와 꼭 같은 나이라는 사실이었다…… (중략) 나는 엄마에게 백화점의 화장품을 안기며 아침저녁으로 바르라고 했다…… (중략) 자신을 위해서만 소비하고 스스로만을 돌보면 되는 독신의 인플루언서에 비해 엄마에게 부족했던 것이 외모 문제 바깥에 자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삶은 간결체가 아니었고 삶이라는 문장은 명료하고 담백한 주어와 동사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P108
“집 근처 슈퍼를 한번 살펴서 재고를 확인했을 정도라면 이 형광등은 언제부터 깜박거리기 시작한 걸까…… (중략) 이제 두 번째로 깜박이기 시작하는 가운데 형광등을 올려다본 뒤 배 속 깊은 어딘가에서 길어 올려지는 한숨의 우물을 가까스로 목구멍 부근에서 인사로 변환하여 토해냈다.”
P 119
“나는 박 씨가 뭐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궁금해하지 않으며 그가 엄마와 언제까지 교류할 사람인지 또 한 가늠하지 않을 것이었다.”
작품 속에서 자세한 설명은 없으나 짚어 봐야 할 게 있다. 예전의 엄마가 수동적이었다면 현재의 엄마는 능동적이다. 자신의 인생을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헤쳐 나간다는 뜻이다. 그건 맨 처음 엄마가 말했던 세 가지 장점의 아빠를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남자 친구 박 씨는 그게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남자를 만나고 있을까? 거기에 대한 답변은 ‘선택’이다. 그때는 선택이 없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끝’이 아니란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건 주제와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엄마 집의 형광등과 생리는 주제를 상징하는 중요한 소도구다. 일단 형광등을 보자. 세 개의 불 중에 두 개가 켜져 있다. 형광등 불빛 두 개는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로 오버 랩 된다. 두 줄, 즉 아직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자란 뜻이며 늙지 않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 소설은 독자인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의 엄마가 늙었다고 생각하지 마라.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봐라, 아직 임신할 수 있지 않은가.
4. 클라이맥스
P 119
“저번 날 네가 알려준 대로 앱에서 사람 구해서 갈았어. 근데 마트에도 형광등 재고가 하나밖에 없더라. 완전히 죽은 것만 갈아주고 계속 깜박이는 건 아예 빼주고 갔어. 그래서 결국은 여전히 두 개야.”
5. 주제를 강화하는 소도구
■소설 제목: 엄마의 완성 – 엄마의 생리를 의미, 끝나지 않았음
■형광등 불빛 두 개: 아직은 임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 즉 늙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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