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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덜 박힌 못 / 문진영 / 작품분석 / 2024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덜 박힌 못 / 문진영 / 작품분석 / 2024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소감
 소설에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 누군가는 뛰어난 작품성이라고 말할 것이다. 작품성?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극찬하며 뽑은 작품들은 대부분 대중성이 없다. 쉽게 얘기하면 전문가에게 뛰어난 작품이지 일반인이 읽으면 이게 뭐냐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작품성이 좋은 영화는 매우 지루하다(특히 프랑스 영화가 그렇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작품도 있으나 극히 드물다. 만약 누가 나에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숨도 안 쉬고 대답하겠다. 재미라고. 여기서 내가 얘기하는 ‘재미’란 여러 가지를 포함한다. 지루하지 않아야 하고, 흥미도 있어야 하며, 반전이 가미되면 금상첨화다. 이런 작품에 대중들은 열광한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여기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 내가 말하는 좋은 작품은 새로운 형식이어야 하고(문학에선 낯선 것이 매우 중요하니까), 비문이 없고 정확한 문장이어야 하며(그건 작가의 기본이다), 시점이 분명해야 하며(시점을 잘 모르는 작가가 좋을 글을 쓸 수 있을까), 묘사가 세밀해야 한다(어떤 문장을 읽다 보면 감탄사가 나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자다. 작가는 화자를 앞세워 모든 것을 표현한다.
 서두를 장황하게 꺼냈으니 이 작품의 분석으로 넘어가 보자. 이 소설은 지루하지 않고 단숨에 읽힌다. 재미가 있다는 뜻이다. 핵심사건인 화자가 경호와 헤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계속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와 있다. 게다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훌륭하다. 그 말인즉 독자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옥에 티도 있다. 밤새도록 언니와 술을 마셨다는 것이나(여자 중에 그런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 우울증을 앓는 경신 언니가 우울증 증상은 전혀 보이진 않으며 뜬금없이 도망쳤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전체를 아우르면 지금 얘기한 옥에 티는 장점에 묻혀 버릴 정도로 미약하다.
 
2. 서사
 총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서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경신 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경호와 헤어진 것은 6년 전이지만 언니의 연락처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언니를 내 삶에서 떼어내기 힘들었으나 언니는 내게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진동이 울리며 문자가 왔다.
 (2) 출장 간 그곳에서 경신 언니에게 받은 문자는 잘 지내냐는 안부 문자였다. 나는 답장 문자를 보내려다 그만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도 언니는 내게 문자를 보냈고 간단한 답장을 계기로 언니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문자로 전해왔다. 경호와 경신 언니는 내가 가족 이외에 처음으로 깊이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연애 초기에 나는 경호에게 누나 얘길 들었다. 세 살 터울의 누나는 경호를 업어 키웠으며 그 어두웠던 시간이 중증의 우울증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불혹의 나이에 기댈 애인이나 직업도 없이 경호네 집에서 산다는 말에 나는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경호가 우리 누나를 만나보겠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자기 누나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 (과거) 여름에 삼계탕집에서 경신 언니를 만났다. 우울증을 앓고 있어 얼굴에 그늘이 한꺼풀 드리워져 있을 거라 짐작했으나 아주 밝은 표정이었다. 우린 자리를 옮겨 경호 집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자꾸 웃음이 났다. 흔하게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다는 느낌. 경신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언니와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분위기에 휩싸여 노래를 불렀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클럽에도 가봤다. 언니와 함께 있으면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가벼운 열병을 앓고 있을 정도였다. 언니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했는데 받는 쪽은 존중받는다고 느낄 정도였다. 나는 그게 언니의 특별한 재능이라고 생각했으나 경호는 다르게 얘기했다. 자신이 낮추는 듯한 태도를 누나가 보이면 상대방이 우위에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 누나는 너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 누나는 누구한테나 그렇다고 말하며 경호는 너는 같이 휩쓸리는 게 아니라 우리 누나를 지켜줘야 한다고 외쳤다. 누나 때문에 우리는 자주 다퉜다.
 (4) 그날 언니는 자주 가는 칵테일 바에서 내내 졸았다. 우울증약의 처방을 바꾸었는데 술을 마시면 잠이 드는 부작용이라고 했다. 바에서 나온 우리는 숙취해소 음료를 마신 뒤 언니가 친구와 만나기로 했던 빌라 앞까지 갔다. 그곳에서 나는 언니와 헤어져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네 시에 경호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니 친구 빌라 얘기를 하자 경호는 함께 들어가지 않을 거였으면 자기에게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냐고 핀잔을 준 뒤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들었다가 일어나 출근했다. 다음날 경호는 내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왔다. 누나가 공원 벤치에 누워 잠들었고 지나가던 사람이 경찰이 신고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경호의 표정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적어도 네가…… 경호는 여기까지 말한 뒤 내게 헤어지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5) 여름이 끝나갈 무렵 초밥집에서 경신 언니를 만났다. 식사 후 경신 언니와 나는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언니가 내게 불쑥 말했다. 돈 좀 빌려달라고. 얼마나 필요하냐는 물음에 백만 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냥 드리겠다고, 안 갚아도 된다고 하자 언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언니에게 백만 원을 이체했다. 갚을 게 꼭. 언니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참새 한 마리가 언니의 무릎으로 날아왔다.
 (6) 다음날부터 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메시지도 뚝 끊겼다. 나는 화가 났다. 내게 연락한 이유가 고작 백만 원 때문이었나. (과거) 그날 밤 나는 그 칵테일 바에서 쿨쿨 잠을 자는 언니를 보며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게 경호의 마음이란 걸 알았다. 나는 도망쳤다.
 (7) 몇 달 후 언니는 내가 일하는 안내데스크에 오만 원 권으로 백만 원을 맡기고 사라졌다. 분홍색 꽃무늬 봉투에는 혜정에게, 라고 적혀 있었고 이후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경호와 헤어진 게 언니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도 했다. 나는 언니의 무릎으로 날아왔던 참새를 떠올렸다. 참새만큼 가벼웠던 나의 진심에 대해서도.
 
3. 주제를 향한 문장들
 주제는 핵심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작품에서의 핵심사건은 화자와 경호가 헤어진 이유다. 두 사람은 언니로 인해 갈등을 겪고 그로 인해 이별한다. 갈등의 이유는 경신 언니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언니의 세심한 배려에 화자(나)는 존중받고 있다고 믿었으나 경호는 정반대였다. 상대방이 언니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끼게 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이 언니에게 달라붙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 경호는 화자에게 경신 언니를 네가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화자는 언니가 언니답게 살도록 도와주겠다고 외쳤다. 이로 인해 갈등이 고조된다. 경신 언니로 두 사람은 자주 다툰다. 갈등의 최고조는 P105에 나왔다. 경호가 몹시 화가 났고 이별을 통보하는 부분이다.
 “보안 게이트 너머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경호가 보였다. 한숨도 못 잤는지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경신 언니는 지하철역 근처 공원 벤치에 누워 잠들어 있었고, 누군가 언니를 발견하고 신고했다는 거였다…… 경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아래 들끓고 있는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경호에 대해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적어도 네가… 경호는 여기까지 말하고 그만두었다.”
여기서 나는 적어도 네가, 이 말은 나는 적어도 네가 그 시간에 빌라로 뛰어와 줄줄 알았다는 뜻이다. 독자인 나 역시 이 부분에 공감한다. 경신 언니가 행방불명이 됐는데 화자는 그냥 잠을 잤으니까. 방금 전까지 언니를 사랑한다고 했지 않는가. 본인은 경신 언니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걸 확인시켜 주듯 주제를 상징하는 두 개의 단어가 등장한다. 하나는 ‘거리’다. ‘거리 두기’ 또는 ‘거리’는 첫 장부터 시작해서 작품 전체에 여러 번 나온다. 거리에 관한 구체적인 장면은 P94에도 등장하고 마지막 P110에도 나온다. 6년 동안 경신 언니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고 화자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나는 웃음이 나왔다. 본인이 먼저 연락해볼 생각은 왜 안 했을까. 화자는 타인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기보다 자신을 생각하는 여자다. 그리고 두 번째 주제 상징 단어는 ‘참새’다. 이건 소도구로 사용되었는데 참새의 의미는 가벼움과 같다. 그걸 확인하듯 공원에서 경신 언니의 무릎으로 난데없이 참새가 날아왔다.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에 가려진 커튼을 걷듯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이 부분이 나는 아쉬웠다).
 P111 “나는 가끔씩 그 참새를 생각한다. 참새만큼 가벼웠던 나의 진심에 관해서도.”
 
3. 클라이맥스
 P110 화자는 바에서 잠을 자는 경신 언니를 보며 지켜주겠다고 생각했다.
 “부서지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결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있는 힘껏. 그리고 그게 경호의 마음이란 걸 알았다. 나는 도망쳤다.”
 조금 전까지는 지켜주겠다더니 도망쳤단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이 부분은 화자의 심정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진술이다. 이게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호는 경신 언니를 끝까지 지켜줄 것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화자는 생각한다. 경신 언니를 경호는 평범한 누나로 놔두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나는 경호에게 도망쳤다는 의미다.
 
4. 주제를 강화하는 소도구
 ■경신 언니의 무릎으로 날아온 참새: 마음의 가벼움을 상징
 ■소설 제목: 덜 박힌 못: 채 완성되지 않은 인연
 ■경신 언니가 주고 간 백만 원: 평소 화자의 생각이 뒤틀린 것을 뜻함

*저는 소설을 쓰면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적힌 글은 먼저 소설을 읽은 뒤에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여기에 작품 분석에 관한 글을 올린다고 저에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잘 읽었다는 댓글 한 줄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