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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유진 / 최진영 / 작품분석 / 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

■유진 / 최진영 / 작품분석 / 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
 
1. 전체적인 소감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예전에 읽었던 작품이다. 한 번 읽었던 작품이면 기시감이 들어야 정상이거늘 헌 집을 리모델링 한 것처럼 새로웠다. 그래서 숨도 쉬지 않고 연거푸 두 번이나 읽었다. 최진영은 글을 참 잘 쓴다. 예전에 '돌맹이'란 작품에서 그걸 느꼈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는 무척 재미있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에게 몹시 흥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번째 읽을 땐 달랐다. 슬펐다. 마치 내 얘기 같았다. 나도 화자처럼 생각 없이 막 웃지는 않았을까?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지 않았을까?
 ‘유진’이란 작품은 사십 대의 나(화자)가 이십여 년 전에 만났던 유진 언니를 회상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은 점점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속성을 꼬집고 비튼다. 그런데 그 섬세한 문장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게다가 그 이면에는 인간의 이기심과 질투도 등장한다.
 봐라, 인간은 이렇게 간사한데 당신인들 뭐가 다르겠는가?
 그럼 이것뿐일까? 나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다른 것도 보였다. 작품 전체에 드러난 인간에 대한 탐구다. 이건 매우 진지했다. 당시에는 겉모습으로 판단했을지라도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 나는 이 부분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는 그런 성찰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 아마 작가는 그런 것을 주장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2. 서사
 (1) 생일에 나는 공미에게 축하 전화를 받았다. 공미는 스물한 살에 만나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였다. 공미와는 특별한 만남 없이 1년에 한 번 생일에 전화 통화하는 사이일 뿐이다. 공미에게 유진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뒤 매일 유진 언니를 생각했다. 바람이 불어 가림막이 벗겨진 것처럼 그전에는 보지 못한 부분이 더 눈에 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중에 오빠의 전화를 받았다. 괜찮다면 이나를 겨울 방학 동안 보살펴 줄 수 있겠니?
 (2) 대입원서를 쓰던 시기에 나는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무의미하다는 생각뿐이었고 나는 매일 파괴 되었다가 재창조되었다. 낯선 도시에서 시작한 스무 살, 나는 혼자 수업을 듣고 밥을 먹었다. 혼자 있기에 좋은 장소인 대 강의동 옥상을 찾아냈고 거기에서 신문을 깔고 책을 읽고, 김밥을 먹고, 담배를 피웠다. 2학년이 시작될 무렵에 고향 친구와 돈을 합쳐 자취방을 얻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 위해 가게를 찾아다녔고 ‘베네치아’에서 내 이름과 같은 이유진을 만났다. 베네치아에서 홀을 담당하던 공미에게 베네치아에 관해 많을 걸 알게 된다. 이유진은 매니저고, 사장의 동생이며, 이 건물과 편의점 건물은 전부 사장 엄마 것이다. 사장 엄마는 아들들한테만 사장을 시키고 이유진에게는 착실히 일이나 하다 결혼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베네치아는 고급레스토랑이 아니었으나 이유진은 고급레스토랑 분위기를 추구했고 품격있는 식당을 원했다. 이유진은 매니저와 언니로 나뉘었다. 우린 매니저 이유진을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했다. 매니저 이유진과 언니 이유진을 가르는 가장 강렬한 잣대는 향수였다. 영업이 끝나면 유진 언니는 손목에 향수를 뿌려서 귀 뒤에 문질렀는데 그 향기는 유진 언니로 돌아오는 향기였다. 회식 자리에서 베네치아 동료들은 내게 대학생 같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학교에서 동기들의 대화를 떠올렸다. 서울대생 남자친구를 둔 여학생을 친구들은 질투했다. 그들의 대화가 유치하단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들이 가리키는 사람을 힐끔 바라봤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 유진 언니가 따라왔다. 다른 애들은 친구들이 매장에 밥 먹으러 오기도 하는데 너는 그런 친구가 없냐고 유진 언니가 물었다. 나는 유치한 애들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고, 다정하고 상냥한 친구들이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을 안 믿는다고, 분위기를 믿는다고 말했다.
 (3) 고교 2학년 때 나는 무영과 같은 반이 되었다. 공부도 잘하고 예쁜 무영은 인기가 많았다. 나는 무영을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했다. 무영의 집에서 놀다 오던 날에 나는 무영은 다른 친구들과도 이런 얘기를 나누는지,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내게 비밀을 털어놓는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무영의 비밀친구였다. 그래서 무영이 여러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우린 서로 못 본척했다. 무영이 결석했을 때 무영과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낙태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영은 악의적인 소문에 휩싸이곤 했다. 본드, 자해, 폭력, 가출. 소문은 언제나 과장이 심했다. 무영이 학교로 돌아왔을 때 몇몇 아이들은 무영을 경멸하고 따돌렸다. 나는 죄책감과 부담을 동시에 가졌다. 계속 무영과 가깝게 지내면 나 역시 그런 소문에 휩싸일 것 같아 나는 무영을 조금씩 밀어냈고 무영은 그걸 바로 알아차렸다. 나는 무영을 믿지 않았고 분위기를 믿었다.
 (4) 유진 언니가 내게 작가가 될 거냐고 언젠가 무영 얘기를 글로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회식이 끝난 뒤 유진 언니는 자기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편의점에서 술과 안줏거리를 사 들고 찾아간 유진 언니의 집을 보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지하 방이었다. 언니는 왜 이런데 사냐는 공미의 질문에 유진 언니는 말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데고 나한테는 소중한 방이야. 부모님 집에서 부모님 살림을 내 것처럼 쓰지만 내 것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날 새벽 이유진의 집을 나오면서 다들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장이 이유진의 가족이 맞는지, 왜 그 돈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하는지에 대해서. 이후 이유진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비아냥거렸고 비웃었다. 지란 언니는 이유진이 지하 방에 살면서 랑콤 향수를 쓰면 안 된다고 그래서 발전이 없는 거라고 주장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유진은 우리를 혼내야 했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멍청한 짓을 그만두라고 가르쳐야 했다. 왜냐하면 이유진은 우리 중 가장 어른이니까. 나는 베네치아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퇴근 후 나는 이유진의 집으로 가서 랑콤 향수를 이유진에게 선물 받았다. 헤어지기 아쉬웠던 우리는 다시 이유진의 집으로 갔고 언니의 집에서 잤다.
 (5) 이나와 겨울을 보내면서 이유진을 떠올렸다. 이나와 찜질방에서 어른에 대해 얘기했다. 이나는 주찬미 언니는 어른이라고 말했다. 혼잣말하면서 안 웃는 것처럼 혼자 웃으며 어른처럼 웃는다고, 하지만 고모는 어른처럼 웃지 않고 그냥 막 웃는다고 말했다.
 
3. 주제
 주제를 얘기하기 전에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게 있다. 그건 바로 언니 유진의 캐릭터다. 소설의 제목이 ‘유진’이듯이 작가는 유진 언니에게 많은 공을 들였다. P90를 보자.
 “손님이 있을 때는 반드시 자기를 ‘매니저님’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쉬는 시간이나 매장 밖에서는 ‘언니’라고 불러도 된다고 이유진은 말했다. 이유진은 품위 있는 말투와 자세를 강조했다. …… 베네치아는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유진은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를 추구했다. 그런 문제로 사장과 이유진은 종종 크게 다퉜다. …… 이유진은 댄스곡을 틀어 놓고 막춤을 추는 야유회에서 혼자 진지하게 발레를 하는 사람 같았다.”
 이 문장에 비추어 보면 이유진은 직업에 대한 투철한 사명 의식은 물론이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P91에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이유진은 확실히 매니저와 언니로 나뉘었다. 매니저 이유진은 아주 짧은 말로 상대의 기를 죽였고 잘못에는 인정을 베풀지 않았다. 매니저 이유진의 눈빛이 변하면 아르바이트생들은 바짝 긴장하면서 방금 전 자기의 말과 행동을 곱씹어 잘못을 찾아냈다. 우리는 매니저 이유진을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했다. 언니 이유진은 친구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도 있지’란 말을 많이 했는데, 그건 매니저 이유진의 입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란 뜻과 함께 앞의 문장을 다시 강조하는 의미로 비추어진다. 일할 때는 엄격하지만 가슴이 따뜻한 사람. 게다가 월급이 많지 않은데도 회식 비용은 언제나 이유진이 계산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이유진이 계산하는 걸 당연시 여겼다. 이유진은 어른이기 때문이고 돈이 많으니까. 하지만 그건 본인들만의 착각이란 것이 곧 밝혀진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인간의 속성 외에도 분위기를 강조한다. 무영과의 관계도 그렇고 유진과의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이를 확인하듯 화자는 말한다.
 “나는 나를 못 믿는 거예요. 분위기를 믿는 나를.”
 이게 무슨 뜻일까? 인간은 간사하고 분위기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이 그렇다. 좋아할 때는 변하지 않겠다고 말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사랑 외에도 다른 것도 많다. 벤츠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이유진을 부러워했다. 사장의 동생이고 이유진의 엄마가 여러 채의 건물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 방을 다녀온 뒤에는 다들 이유진을 무시하고 비난한다. 슬프지만 이게 인간의 모습이다. (참고로 나는 벤츠 타고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이동수단인데 그딴 걸 왜 부러워하겠는가. 글을 잘 쓰는 사람, 노력하는 사람, 열정이 있는 사람이 부러울 뿐이다. 이렇게 부러울 것이 천지인데……)
 P106를 보자.
 “나는 여전히 어른스러운 게 뭔지 잘 모르고, 모르니까 긴장했다. 긴장했을 때 나는 좀 더 이나를 신경 쓸 수 있었다. 이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 최소한 어른이라고 이나를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피할 수는 있었다. 이십 년 전 나는 이유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진은 나를 이해했을까? 그때 우리를 야단치지 않았던, 우리를 지켜만 보던 이유진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은데……”
 아무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말과 행동에 대한 경계를 뜻한다.
 P107 마지막 문장에 주목했다.
 “겨울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 이나는 아빠의 차를 타고 웃으며 돌아갔다. 나는 다시 혼자 남았다. 그리고 여전히 유진을 생각한다.”
 이게 뭔 뜻일까? 한 가지만 보지 마라, 라고 해석된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경솔한 인간들과 달리 진정한 어른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
 
4. 주제를 강화하는 소도구
 ■랑콤 향수: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타인에게 줌
■조카 이나의 말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