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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 김병운 / 작품분석 / 2023 올해의 문제소설집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 김병운 / 작품분석 / 2023 올해의 문제소설집 중에서
 
1.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
지인중에 퀴어 소설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분의 주장은 이렇다. 동성연애는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며 퀴어소설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이 작품 역시 그런 것들이 강조 되었다고. 그분의 얘기가 일리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퀴어 소설을 문학의 한 장르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나 고정관념 없이 그냥 보통의 작품처럼 대한다는 뜻이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지인처럼 퀴어 소설을 매우 싫어했다. 하지만 싫든 좋든 소설집을 읽다보니 계속 접하게 되었고 그저 문학으로만 받아들인다. 4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강렬했던 퀴어 작품을 접했는데 그게 바로 김봉곤의 작품이었다. 그의 소설 ‘여름 스피드’를 읽은 뒤 나는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질 못했다. 퀴어의 세상은 내가 살아왔던 세계가 아니었다. 성(性)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 비추어진 그들의 생각과 모습이었다. 성적인 충격과 함께 김봉곤의 작품은 문장이 매우 좋았다. 여름스피드 외에 특히 ‘시절과 기분’이란 소설을 접한 뒤에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그의 문장에 매료될 정도였다. 김봉곤의 작품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놓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박상영이 등장했다. 박상영도 퀴어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의 작품도 문장이 매끄럽고 부드러웠고 게다가 이젠 김병운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이 작품의 작가 김병운도 박상영이나 김봉곤처럼 대놓고 퀴어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이번에도 그의 작품을 읽다 보니 주제가 뻔히 보인다. 김병운은 아예 주제를 암시하는 뼈대를 땅에 박아놓고 살을 붙여가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2. 서사
(1) 장희와 나는 P가 묻혀있는 산사나무를 찾는다. 그곳에서 장희는 내게 다 다음주 주말에 부산에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장희는 자신의 진무 삼촌(엄밀하게는 할머니의 큰오빠의 막내아들이다. 아버지의 외종사촌이지만 엄마가 삼촌으로 불렀기에 장희도 그렇게 불렀다)의 얘기를 꺼내며 병문안을 가자고 말한다. 죽은 줄 알았던 삼촌이 놀랍게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2) 여기는 장희의 입장에서 진술하는 부분이다(시점 이동은 아니다). 장희는 열흘 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나(화자)에게 들려준다. 낯선 사람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진무 삼촌의 얘기를 꺼낸다. 삼촌 대신 엄마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진무 삼촌이 살아 있다고 얘기하면서 삼촌의 소식을 전한다. 삼촌은 죽은 것이 아니라 20여 년 전에 한국에 왔고 부산에 살았다고. 삼촌은 그(이영서 씨)에게 장희에 대한 얘기를 자주 얘기했다고 말한다. 한번은 어린 장희가 자기(삼촌)를 힘껏 안아주었던 적이 있는데 그 순간 참고 있던 뭔가가 무너지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후 사는 게 무섭거나 참담한 날에는 삼촌은 그 순간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3) 삼촌의 지인 이영서 씨는 우리를 부산으로 초대한 뒤 조개구이를 시켜준다. 식사가 끝난 뒤에 이영서 씨는 우리에게 자갈 해변에 관한 소중한 기억을 말해준다. 두 사람은 요양병원에서 만났고 삼촌은 이영서 씨를 깨우쳐 주었다고. 당신을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다시 살 수 있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걸.
(4) 부산까지 와서도 우리는 진무 삼촌을 만날 수 없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요양병원의 면회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삼촌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어 병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나는 장희의 배려를 떠올린다. 항상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장희를 통해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게 사실은 살고 싶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5) 장희는 내게 진무 삼촌이 주었던 카메라 얘기를 들려준다. 미국에 가기 전에 얻은 카메라였다. 장희는 엄마에게 그날 삼촌과 함께 있었던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고 거짓말을 한다.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나는 장희의 얘기를 들으며 P를 떠올린다. 사람들에게 도덕적이고 모범적이고 무해 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이유는 P와 같이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6) 장희는 노트북을 통해 삼촌과 영상통화를 하는데 삼촌을 본 순간 장희는 울음을 터뜨리고 삼촌은 장희 엄마의 얘기를 꺼낸다. 자신이 타코마에 있을 때 형수가 꼬박꼬박 연하장을 보내주었다고. 장희가 한글을 배운 뒤 엽서에는 삐뚫빼뚫한 글씨로 ‘또 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지만 장희는 자신이 그런 글을 썼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7)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부산역 대합실에서 기다리다가 나는 장희의 카메라를 고친다. 낡은 건전지를 빼고 다른 건전지로 갈아 끼우자 카메라는 작동하며 안에 들어 있던 필름이 자동으로 감기는 소리가 들린다. 24, 23,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장희가 먼저 웃었고 내가 따라 웃는다.
 
3.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
소설의 주제는 꼭꼭 숨기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 작품은 한 번만 읽어도 주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래서 소금을 넣지 않은 음식처럼 싱겁다. 먼저 P75를 보자.
“나를 죽게 한 건 병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니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약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걸.”
누군가 그랬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된다고. 이 문장이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이영서 씬 작품 속에서 장희와 삼촌의 다리를 놓는 아주 중요한 역할인데 그 역시 성소수자다. 퀴어로 살아온 이영서 씬 상처받은 마음을 진무 삼촌을 통해 치료 받았다. 이처럼 작품 속에서 상처에 대한 마음과 편견은 곳곳에 등장한다. 장희가 진무 삼촌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준비한 카메라 역시 그것을 상징한다. 어린 시절, 장희는 엄마에게 진무 삼촌과 같이 여행하던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거짓말을 하는데 이것 역시 상처에 대한 에피소드다. 이유는 엄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P81 에는 마침표를 찍듯이 주제를 강조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나는 당신들 못지않게, 아니, 당신들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고 모범적이며 무해 하므로 내게도 자격이 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기꺼이 참고 견뎠던 것이다. 오직 내가 원했던 단 한 자리, P의 곁에 있기 위해서. P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주인공에 대한 얘기다. 이게 이 작품의 메인 스토리이며 장희와 진무 삼촌은 서브 스토리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다. 퀴어는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으며 당신들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다. 그러니 편견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지 말아달라.
 
4. 주제를 강조하는 소도구
■고장 난 카메라: 카메라가 다시 작동하는 의미는 한 시절의 끝과 시작을 말한다.
■엄마가 삼촌에게 보낸 연하장: 누구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5. 아쉬운 점
■고장 난 카메라가 갑자기 작동한다는 게 좀 억지스럽다. 단순히 건전지 이상이라면 어린아이라도 고치지 않았을까. 장희의 진술에 의하면 수리점에 가져갔던 적도 있다는데 그럼 그 수리점 기사는 건전지도 갈아 끼울 줄 모르는 우매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게다가 내 경험상 건전지에서는 수은이 빠져나와 카메라에 오랫동안들어 있었다면 쉽게 작동되지 않는다. 이렇듯 상식적이지 않은 설정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퀴어 후진국'이란 용어는 매우 불편했다. 우리나라를 지칭한 말인데 그렇다면 '퀴어 선진국'은 어디란 말인가. 단어 하나에도 품격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