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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몸과 빛 / 위수정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몸과 빛 / 위수정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중
 
1. 전체적인 소감
 어릴 적에 종이배를 물 위에 띄운 적이 있다. 여기서 물 위는 고무대야 같은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하천을 뜻한다. 종이배는 물살의 방향대로 떠내려 가기 시작했고 순간 내 입에선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냇가에서 종이배는 빙글빙글 앞 뒤를 바꾸어가며 튀어나온 돌에 부딪히면서도 하류로 계속 떠내려갔다. 어느 순간 종이배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뿌듯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종이배는 하류로 떠내려가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뭉개졌다는 것을 알았다. 종이가 물에 젖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시작부터 종이배 얘기를 한 이유는 바로 이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작가들은 자신의 소설에서 서두를 좀 특이하게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흥미 유발이다. 글을 읽으며 독자는 궁금해한다. 주인공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뭘까? 교통 사고는 일부러 난 것일까? 사람을 죽인 인사 사고면 음주 운전이지 않을까? 그러면서 책장을 계속 넘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작품은 뒤로 갈수록 물에 젖은 종이배처럼 뭉개진다. 작위적이고, 시시하고, 맥도 빠진다. 이건 너무 유치하잖아?
그러나 위수정에 ‘몸과 빛’은 달랐다. 끝까지 긴장에 템포를 늦추지 않았다. 마치 종이배의 바닥에 물에 젖지 않는 방수 처리를 한 것 같았다.  위수정 작가는 참 글을 잘쓴다. 이전 작품이었던 ‘풍경과 사랑’에서도 그걸 느꼈다.
 
2. 서사
(1) 생활에 충만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도와 무관한 상황이라면 당신은 한밤중에 발코니에 나와 담배를 피우다 맞은편 건물의 우산을 보고 귀신인 줄 알고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2)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난다. 남자가 몰던 트럭에 치여 사망한 사람은 나다. 나는 지금 도로의 상황을 모두 보고 있다. 우울증을 앓던 나는 약을 먹으며 깊은 우울로 들어가지 않고 버텼는데 왜 도로에 뛰어들었을까. 내게는 연인이 있었던가? 아닌가. 누구였더라. 나는 경찰차를 타고 남자와 경찰서로 간다. 내일 어디로 가기로 했다는 남자는 마트 마지막 배달에서 나를 치었다고 말한다. 전과도 없고, 음주 운전도 아니고, 과속도 아니었다. 나는 남자가 피해자처럼 느껴진다.
(3) 새벽이 되어서 남자는 경찰서를 나와 집으로 간다. 빌라 옥상 문을 열자 그곳에서 나온 여자는 이주(다문화)여성이다. 남자는 라면을 끓이라고 말한 뒤 침대에 눕더니 그냥 잔다. 여자는 라면을 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식사를 끝낸 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운다. 기지개를 켜던 여자가 흠칫 놀라더니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며 안으로 들어간다. 여자가 봤던 곳에는 나와 같은 부류인 남자 영혼(귀신)이 있다.
(4) 나는 남자 영혼 문수와 인사를 나눈다. 그가 남자의 아내인 이주여성과 관계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문수의 말에 의하면 여자의 이름은 썸밧이다. 잠에서 깬 트럭 운전사 남자는 검은 정장을 입고 나의 장례식장으로 간다.
내 이름은 황주희다. 나를 죽인 남자는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함께 운다. 장례식장의 구석에 앉아있는 남자를 어디선가 본듯하다. 트럭 운전사 남자는 나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뒤 장례식장을 떠난다. 골목길에 들어선 뒤 그는 옷 속에 있던 조의금 봉투를 꺼내 돈만 남기고 봉투를 버린다. 조의금을 일부러 내지 않은 것이다.
오늘은 트럭 운전사 남자 아내(썸밧)의 생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케익과 샴페인을 산 남자는 아내와 생일파티를 한다. 나는 그들이 축배를 들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알고 보니 여자의 이름은 썸밧이 아니라 쑤안이다. 남자 영혼 문수는 처음 만날 때부터 조금씩 흐려지더니 이제 거의 형체가 없다. 비가 내리자 나는 함께 누워 빗소리를 듣던 남자를 떠올린다. 그의 이름은 영호다. 장례식장에서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앉아있던 남자.
나는 트럭 운전사 남자를 바라본다. 웬일인지 그는 가위에 눌린다. 잠에서 깬 그는 미안하다고 울음을 터뜨리고 쑤안은 남자에게 괜찮다고 위로한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나는 괴로워한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의 집을 나선다. 영호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몸이 없어진다. 나는 남자 영혼 문수를 이해했고, 죽음을 이해했고,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3.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
 작가는 주인공 ‘나’를 차로 친 트럭 운전사 캐릭터 구축에 많은 공을 들였다. 죽어서 영혼이 된 나는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데 작가는 운전사 남자를 동정하게 만든다. 가난한 환경속에서 이주여성과 근근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그렇다. 게다가 주인공 ‘나’가 일부러 차로 뛰어든 분위기도 풍겨준다. 그래서 독자들은 운전사에게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닐수도 있어,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역시 인사 사고를 낸 그 남자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약자를 동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니까. 그 남자의 심정도 한편 이해가 간다. P182 윗부분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내가 그 여자를 죽인 게 맞는 것 같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하루종일 그 생각만 들어. 남자는 엉엉 울면서 말했다. 앞으로 나 어떻게 사냐. 평생 어떻게 사냐. 여자는 멍한 표정으로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트럭 운전사 남자는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평정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왜 그랬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본인의 마음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니까.하지만 뒤로 가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진다. 트럭 운전사는 ‘나’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고 자신이 준비해간 조의금도 장례식장에 전해주지 않고 그냥 가져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을 죽여놓고 아내의 생일이라며 파티까지 한다. 어허,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전혀 없잖아? 그걸 증명하듯 P180에는 운전사 남자의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왜 하필 그때 튀어나와서. 씨발, 정말 좆같아서 못 살겠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잘못보다는 상대를 비난하고 신세 한탄을 하는 사람이다.  
작품을 읽으며 나는 남자 영혼 문수의 역할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문수가 아니라 트럭 운전사 남자에게 찾아야 한다. 물론 문수의 캐릭터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희미해지는 역할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가장 마지막 문장에서 찿아봤다.
 “살고 싶었다.”
 이 표현은 결국 살아있다는 것의 고마움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말한다. 죽은 다음에 그걸 깨우친다면 늦으니까.
 
4. 소설 제목
 ■몸과 빛: 몸-살아있음, 빛-사라지는 것. ‘몸과 빛’은 '살아있음'과 '죽음' 뜻한다.
 
5. 기타
 이 작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니라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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