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 나의 반려밭솥에게 / 박지영 / 작품 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소감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의식하며 산다. 나도 마찬가지다. 은행 CD기 사용 중에 뒤에 사람이 서있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키오스크도 마찬가지다. 나의 불안함은 모두 하나에 맞춰있다. 욕먹지 않기 위해서다. 빨리하지 않고 뭘 저렇게 꾸물거녀.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친한 후배와 인생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 후배가 말했다. 형님에 대한 얘길 꺼내면 험담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 얘길 듣고 나는 괜히 우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착함은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데 애석하게도 나는 그걸 몰랐다.
작품을 보자. 이글을 읽으며 나를 계속 돌아봤다. 나역시 착함을 인정받기 위해 강선동처럼 애쓴 것은 아닐까. 작품을 다 읽고 난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치매 노인의 돌봄을 통해 돈벌이를 하는 아들의 행동이 과연 착한 것일까? 그렇다면 착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작가는 이런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작품을 통해서 치매노인의 돌봄과 유튜브를 이용한 돈벌이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이 과연 옳은 것일까?
2. 서사
(1) 강선동의 아버지 강만석은 치매에 걸린 노인이다. 아들 강선동은 아버지와 함께 살며 칭찬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포도 스티커를 붙여준다. 전기밥솥과 아버지의 치매를 비교한다. 똑같이 7년이 되었다고.
(2) 3남매의 막내 강선동은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병수발을 자처한다. 강선동은 착했고 이제 치매 노인의 돌보미 길을 걷게 된다.
(3) 극단에 다니던 강선만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그곳을 나온 뒤에는 갈 곳이 없다. 치매 아버지를 돌보는 대신 비용을 달라며 강선동은 형과 누나에게 돈을 요구한다. 하지만 비용이 높다는 생각에 형과 누나는 반응이 없다. 착한 내 동생이 돈만 아는 괴물이 되었다는 문자가 올 정도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남은 단어는 ‘염병’이었다. 유명해지기 위해 강선동은 아버지와 유튜브를 시작한다.
(4) 아버지와 함께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강선동은 유튜브에 올린다. 다른 치매 노인이 나오는 영상을 모니터하던 중 어릴 적 친구 제영무의 채널을 발견한다. 제영무는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와 함께 유튜브 방송 중이었고 제영무의 엄마인 권순영은 강선동의 어릴 적 피아노 선생이기도 했다.
(5) 강선동은 겉으로만 착한 척을 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포도알을 많이 받아 선행상을 타지만 그것은 착함을 가장한 악행이었다. 5학년 때 푸른 반점이 있어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여학생에게 강선동은 너의 얼굴에서 나는 푸는 별을 본다고 편지를 쓴다. 여학생은 뛰쳐나가고 같은 반 친구였던 제영무는 강선동의 위선을 알고 제지한다.
(6) 제영무의 유튜브 채널은 4만 명이 넘을 정도의 인기지만 강선동의 채널은 썰렁하다.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강선동은 아버지 강만석을 코미디언으로 만들기로 작심한다. 아버지에게 턱시도 옷을 입히고 기저귀를 채운 뒤 산책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독자 수가 늘었고 반응이 온다. 기뻐하던 강선동은 책을 내고 방송에 출연하는 상상까지 한다.
(7) 정작 책을 낸 것은 강선동이 아니고 제영무였다. 제영무는 방송에 출연하며 책이 불티나게 팔린다. 강선동은 배가 아팠다. 인기 채널이 되기 위해 치매 아버지를 살찌우기로 마음먹는다. 강선동은 아버지에게 열량이 높은 간식들을 먹인다. 문제는 똥이었다. 너무 많이 먹다 보니 똥을 많이 쌌다. 한편 유튜브에서는 아버지를 개처럼 끌고 다닌다는 악플이 늘어갔다. 호의적이었던 사람들이 싸늘하게 변하자 강선동은 자신이 얼마나 아버지를 힘들게 돌보는지 알려주기 위해 변비약을 먹인다. 한 손으로 똥을 받아내는 비참한 아버지의 모습을 생방송으로 내보내자 채팅창은 욕설로 가득 찼고 라이브 방송은 강제로 종료된다.
(8) 아버지는 설사로 인한 탈수 현상과 급성 당 쇼크로 인한 의식 불명 상태가 되고 이제 아버지의 보호자는 강선동이 아니라 누나로 바뀐다. 강선동은 알게 되었다. 아버지 강만석이 언젠가 했던 말, 너무 애쓰지 마라, 의 뜻은 아버지가 착한 아이 강선동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는 것을.
(9) 강선동은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고도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싸워야 할 이름을 메모장에 적어 나간다. 가장 열심히 싸워야 하는 것이 자기 안의 착한 강선동이었다. 유튜브 방송을 다시 시작하며 강선동은 자신의 처지를 조기 치매라고 변명한다. 그리고 착한 아이 강선동은 너무 애쓰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3.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
주인공 강선동은 어릴 때부터 착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의 행동은 대부분 가식이다. 그걸 가장 먼저 안 사람은 강선동의 아버지 강만석이었다. 2장 P93에는 그 부분이 나와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인 강선동이 교실 뒤편에 붙여놓은 마흔여덟 개의 포도알 스티커를 빈틈없이 채우고 처음으로 선행상이란 걸 받아왔을 때 강만석이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염병, 너무 애쓰지 마라. 그날 이후 강선동은 한층 더 착한 아이가 되었다. 그것이 강만석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아버지와 불화하는 아들의 방식이었다.”
여기서 아버지의 캐릭터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는 아들인 강선동에게 착함에 대해에 애쓰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걸 알 수 있는 것이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염병’이다. 비관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강선동은 아마도 영향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강선동이 나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두 번째 사람은 친구 제영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여학생 얼굴의 푸른점을 보며 강선동이 너의 얼굴에서 나는 별을 본다는 편지를 썼을 때 제영무는 강선동에게 그만두라고 말한다. 강선동은 제영무가 자신의 본모습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제영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고 들켰다는 심정이 된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압력밥솥에 비유하고 돈벌이로 생각하는 강선동과 달리 친구 제영무는 진실된 사람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하고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그런 제영무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강선동은 싫다. 제영무 보다 더 잘나가는 유튜버가 되기 위해 강선동은 아버지에게 못된 짓을 저지른다. 착함을 가장한 악행으로 아버지를 위험에 빠뜨리는 강선동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자신이 조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작품을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주제가 잡히지 않았다. 그건 소설을 잘 썼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내가 아둔하다는 뜻도 된다. 다시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을 살펴봤다.
“강선동은 한 번도 싸운 적 없었다.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그랬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착했다. 서른아홉이 되어서야 강선동은 자신과 남을 돌보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착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착함은 양보가 아니었다. 희생이 아니었다. 투쟁하고 악착같이 싸우고 탐욕스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하루 세끼 성실하게 꼭꼭 씹어 든든하게 먹고 근력 운동을 하고 체력을 키우며 사라지지 않도록 버텨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한 번도 싸운적이 없다니. 이 문장을 보며 이런 주제로 결론이 지어진다. ‘치매에 걸린 가족을 이용해 돈벌이를 궁리하는 삐뚫어진 남자의 행동이 과연 착함일까?’
4. 주제에 대한 첨언
그런데 이상하다. 주제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화장실에서 볼일보고 물을 내리지 않을 것처럼 찜찜하다. 그래서 다시 읽어봤다. 이 작품의 반복되는 문장은 두 개로 압축된다. 하나는 ‘염병’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애쓰지 마라’다. 기본형이 ‘염병하다’의 ‘염병’은 아주 못마땅하다는 뜻인데 왜 아버지는 강선동에게 칭찬을 하지 않고 이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8장의 제영무와 엄마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P123~124까지다.
“엄마, 기억해요? 선동이가 왔어요. 강선동, 스테파노 말이에요. 기억하지. 착한 아이였잖아요. 착한 아이였지. 그런데 선동이는 몰라요. 뭘 모른다고? 자기가 착한 아인 걸 몰라요. 바보구나. 네. 바보예요. 그러니 혼내주세요. 싫어. 왜요? 착한 아이는 혼내는 거 아니야. 그러면요? 칭찬해줘야지.”
소설의 주제란 것이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겠지만 자꾸 “칭찬해줘야지”라는 문장에 눈길이 간다. 음, 포도알 스티커도 칭찬을 받기 위한 소도구인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강선동의 아버지 강만석이 아들에게 어릴때부터 계속 칭찬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강선동이 계속 악행을 저질렀을까.
5. 주제를 강화하는 소도구
■포도알 스티커 : 칭찬을 뜻하고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압력밥솥 : 강선동의 부를 채워주는 물질이며 아버지를 돈벌이로 생각한다.
■염병: 비관적인 성격을 표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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