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머니의 모든 것 / 문진영 / 작품 분석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소감
아버지는 집안의 종손이었고 그래서 엄마는 많은 제사를 지냈다. 소설의 작품분석을 시작하며 뜬금없이 제사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제사 지낼 때 보았던 친척 한 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제사가 있는 날이면 당숙을 비롯한 몇 분의 친척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는데 그 중 한 분이 우리 형제들에게 용돈을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은 우리 형제들에게 은근히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보자마자 대뜸 지갑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마치 잊고 있었다는 듯이 지갑을 꺼내 돈을 주는식이었다. 어떤 날에는 바람만 잔뜩 집어넣고 그냥 집으로 갈 때도 있었다. 그러니 그분이 우리 집을 나가기 전까지 우리 형제들은 그분의 모든 행동을 주시했다. 조상님께 절을 하면서도 용돈을 언제 주실까? 그 생각뿐이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며 그분의 행동이 떠오는 이유는 배정심 할머니 때문이다. 과연 배정심 여사가 이혼 후의 생활, 즉 과거 얘기는 언제 나오나, 하는 거였다. 나는 그게 궁금했다. 배정심 여사가 혼자 살았던 40년의 인생이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마 이 작품을 읽는 거의 모든 독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작가는 불친절하게도 그 친척분이 용돈을 주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는 것처럼 배정심 여사의 그 부분을 안들려준다. 그런데도 놀랍다. 재미가 있었으니까.
2. 서사 – 버스 한 정거장 지나 올 정도의 짧은 시간이다.
(1) 버스를 타고 가던 나는 창밖으로 외할머니 배정심 여사를 본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재빨리 버스를 세우지 못했다.
(2) 배정심 여사는 자식들을 버리고 떠나 40년 가까이 연락 한번 않고 지냈다. 나는 2년 전 겨울에 외할머니를 처음 봤고 친해지려 노력했다. 한 벌의 코트와 한 개의 모자, 한 장의 목도리로 배정심 여사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짐작만 할 뿐이다.
(3) 그해 가을에 삼촌이 죽었다. 비혼이었던 삼촌의 재산 상속 1순위는 외할머니인 배정심 여사였고 엄마를 대신해 법원이 배정심 여사를 찾아줬다. 40년 만에 외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엄마는 나쁘지 않았다고 말한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바람처럼 상속을 포기했다.
(4) 엄마가 열두 살 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혼했다. 외할아버지 말에 의하면 갈 길이 다른 사람이었다며 배정심 여사를 이해하자고 했다. 엄마도 내가 고3 때 아버지와 이혼했다. 나는 친할머니와 지내다가 혼자 사는 엄마의 집으로 들어왔다.
(5) 나는 엄마와 함께 한정식집에서 외할머니를 만났다. 품위 있게 밥을 먹는 외할머니 배정심 여사를 보며 나는 엄마와 할머니를 비교했다. 엄마 역시 식사예절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라는 존재는 친할머니처럼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내준 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시어머니는 고개를 흔들게 만드는 존재였다. 나는 외할머니 배정심 여사의 삶에 대해 궁금해졌다.
(6) 나는 외할머니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나에 대한 것을 얘기하면 외할머니도 자신에 대해서 얘기 할 거라 짐작했으나 배정심 여사는 자신의 삶에 관해 일절 말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했고 그녀의 아파트에 가고 싶었다. 여공이었던 배정심 여사는 젊은 시절 서점에 들렀다가 외할아버지를 만났다. 검정고시와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외할아버지의 말을 믿고 결혼을 했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할머니는 가출했다.
(7) 1년이 지나고 이듬해 10월에 나는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 배정심 여사의 생일을 챙겨줬다.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배정심 여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그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8) 외할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아 엄마와 나는 배정심 여사의 집으로 갔다. 생각과 달리 할머니는 그 집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배정심 여사의 집에서 나는 그녀가 수많은 노트에 전집을 필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는 다섯 살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대합실 의자에 엄마를 혼자 앉혀놓고 사라진 배정심 여사는 몇 시간 뒤 다시 헐레벌떡 나타나 엄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9) 겨울이 지나고 해가 넘어가도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딱 맞는 1인분의 삶을 산 배정심 여사가 왜 집을 나갔는지 나는 모르겠다. 알아보니 할머니는 젊은 시절 직업전문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했으며 똑똑하고 우아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배정심 여사는 은퇴하는 날에 눈물을 보이며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
(10) 다음 정류장에 버스가 섰을 때 나는 아까 그 자리로 뛰어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밤색 코트를 입은 외할머니는 없었다. 나는 배정심 여사는 그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 주제를 향한 문장
이 작품은 인물 중심의 소설이다. 외할머니 배정심 여사의 인물을 통해 작가는 주체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다. 한 남자의 아내로, 또 아이들의 어머니로, 그리고 누군가의 며느리로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현대의 여성들에게 묻는다.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포기하면 어떡하냐고. 그리고 작가는 화자인 나와 어머니의 모습을 결코 도전적이지 않은 잔잔한 문장으로 이어나간다.
작품의 주제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외할머니 배정심 여사의 캐릭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정심 여사는 요즘으로 치면 페미니스트이면서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여성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이혼까지 한 배정심 여사를 보며 화자는 자신도 외할머니처럼 살고 싶다고 동경한다. 그런 화자의 마음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그럼 이번엔 화자의 엄마를 살펴보자. 엄마 역시 외할머니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빠와의 이혼도 그렇고 특히 식사할 때의 예절이 그걸 말해준다.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선 핵심 사건이 중요하다. 여기서의 핵심 사건은 외할머니 배정심 여사의 가출이다. 가출은 크게 두 번인데, 첫 번째는 외할아버지와 이별하기 위한 가출이고 두 번째는 현재의 가출이다. 이 가출의 이유가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에서의 가출은 자신의 꿈을 위해서였다. 그걸 위해 외할머니는 가족의 인연까지 끊었으니까. 그리고 40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난 외할머니는 또 가출한다. 현재의 가출이다. 왜 그랬을까? 두 번째의 가출은 앞의 가출과 결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현재의 가출은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는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위해 다시 어디론가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번째 읽을 때는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배정심 여사는 꿈을 위해선 가족까지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생각에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가족이 이토록 중요한데 나는 헛살아온 것이 아닐까? 그걸 암시하는 내용이 P81에 나온다. 배정심 여사의 일흔여섯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엄마와 화자는 외할머니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생일 케이크 앞에서 배정심 여사는 전에 없이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 주목한다. 내 추측으론 배정심 여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게 사랑이구나. 그럼 나는 여지껏 잘못 살아왔지 않은가.’
이걸 확인이라도 하듯 P82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평생을 혼자 잘 살아왔는데, 딸과 손녀가 나타나서 그녀의 영역을 지나치게 침범한 것은 아닐까? 나의 관심과 호기심이 폭력으로 느껴졌던 건 아닐까? 혹은 생신 잔치? 그날의 뭔가가 할머니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건 아닐까?”
4. 주제를 강조하는 소도구
■한 벌뿐인 외투: 미니멀리즘과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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