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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 최미래 / 작품분석 / 2024 이상문학상 작품집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 최미래 / 작품분석 / 2024 이상문학상 작품집

 
1. 전체적인 느낌
평생 소설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7~8년 동안 줄곧 소설만 읽다 보니 웬만한 작가는 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이 좋으면 인터넷 서점을 통해 그 사람의 책을 주문했고 그렇게 쌓인 책이 많다. 이젠 책꽂이에 책을 꽂을 공간도 없는데 내 기억 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최미래란 작가는 없다. 그런데 글을 잘쓴다. 도서관에 앉아 천천히 최미래 작가의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허? 이 사람 글이 좋다. 화자의 내면에 들어갔다가 슬그머니 빠졌다 하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군. 그렇게 이 작품을 통해 나는 최미래를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화자의 일상에서 보는 베이비 시터의 일상이다. 그런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만약 이 설정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김빠진 사이다처럼 밋밋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어린 서라의 상황이다.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유치원생 아이는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나 역시 소설을 읽으며 서라의 딱한 처지에 감정이 유입되었다. 그래서일까. 화자에게 시터 일을 그만두지 말라고, 서라를 계속 돌봐주라고 주문을 걸었다. 이 작품 속에서 서라 아빠는 중요한 존재이다. 화자의 진술만 봐서는 서라 아빠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맞을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서라 아빠는 겉모습과 달리 화자에게 정해진 선을 넘지 말라고 요구한다. 게다가 어린 서라를 집에 남겨두고 술 마시고 외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까? 아무튼 최미래 작가의 이 작품을 통해 가정의 소중함과 인간관계와 적당한 경계, 나의 꿈과 목표 등 많은 것을 생각했다. 
 
2. 서사
(1) 연극강사인 나는 오후 다섯시에 바빠진다. 서라를 데리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붙어있는 사진 속의 여자는 서라의 엄마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이집에서 서라를 돌보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일한지 3개월째고 금방 익숙해졌다. 서라는 말이 없는 아이였으나 필요할 때는 정확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서라의 관심을 끌기위해 노력했으나 곧 포기했다. 나는 이 집에서 쉽게 돈을 벌고 그 사실에 만족했다. 연기학원 시간 강사 일을 하던 나는 지역별 맘카페에 가입해 놀이시터 경험을 쌓았다. 베이비 시터를 구한다는 문의에 거절 답장을 보냈지만 다음날 다시 편지가 왔고 서라네 집으로 찾아왔다. 서라 할머니는 내게 서라 옷 입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고 나는 이렇게 일을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일은 아주간단했다. 오후 다섯시에 아이를 데리고 온 후 아이가 잠들때까지 같이 있어주는 일이다. 서라 할머니는 내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몸이 편하고 여유가 생겨 나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서라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만 나는 외출의 횟수가 적어졌다. 서라와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다가 과일가게에 들렀다. 과일가게 사장의 권유에 한눈을 파는 사이 서라 할머니에 전화를 받았다. 내일 서라 아빠가 올 거예요. 나는 서라에게 한글도 가르치고 그림도 그리며 재미있게 놀아주겠다도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서라 아빠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신용카드를 건네며 지금까지 해준 것처럼 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내 고용주가 바뀐 것이 만족스러웠다.
(2) 나는 서라 아빠와 가볍게 맥주도 마실만큼 친해졌다. 서라는 아빠가 온 뒤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날에 서라 아빠는 내게 명품 머리띠를 선물했다. 내가 이집에서 꼭 필요한 존재란 것이 느껴졌다.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나 나는 양동이를 떠올렸다. 발음연습을 하기 위해 쓰던 것이었다. 친구들은 서라 아빠가 선물한 명품 머리띠를 보며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베이비시터 일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듯 술자리는 신세 한탄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서라와 서라 아빠와 함께 옹기마을에 갔다. 특별 근무수당을 약속받은 것도 있으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함이었다. 안방에서 잠을 자다가 서라 아빠에게 들켰고 무안을 당한 후였다. 서라 엄마는 바람을 피워 헤어진 것이 아니라 잠을 자다가 갑자기 죽은 것이란 것을 알게 됐다. 옹기마을에서 서라는 내게 어리광을 부리며 몸을 밀착했고 나는 어딜 가도 아기엄마였으나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우리는 가짜 가족이었으니까. 서라 아빠는 옹기마을에서 돌아오며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내게 사정이 생겼다며 외출해야 된다며 오늘은 서라와 함께 집에서 자고 가라고 요청했다. 나는 거절을 못했다. 돈이 떠올랐고 편안한 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아동극을 하던 시절 나는 두꺼비였다. 애써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 내가 기특했다. 그날 이후 나는 서라네서 살다시피 했다. 야간 수당에 택시비까지 받으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베이비시터로 살순 없었다. 친구에게 공연기획 마케팅 업무 일자리를 제안 받았다. 냉장고에는 이전에 있던 사진이 사라지고 새로운 사진이 붙었다. 옹기마을에서 찍은 내 사진이다. 이전 사진이 서라 엄마가 아니란 것을 예전에 알았다. 겨울 음식, 술, 담배로 서라 아빠와 나는 더 가까워졌다. 선을 그어야 할 때를 한참 지나버렸다. 서라 아빠는 밖에서 술에 취해 서라를 위해 자고 가달라는 말을 했고 나는 거절했다. 나의 거절에 서라 아빠는 짜증을 냈다.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서라를 위해서 요청을 들어줘야 하는 입장에 지나지 않았다. 서라 아빠를 기다리며 친구가 제안한 회사를 검색했다. 단순 업무였고 단점이 많은 회사였지만 장점을 찾아내 출근하는 나를 상상했다. 일순 마우스가 말을 듣지 않더니 폴더가 나타나며 야동이 열렸다. 제목에 가정부, 하녀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서라는 잠에서 깨어나 나를 부르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서라는 내가 나갈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울고 있는 서라를 끌어안았다. 서라 아빠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는데 그만두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올봄에는 시급을 올려 책정하고 더 많은 일을 맡아 달라고 했다. 이 정도면 저축도 가능했다. 나는 내가 만든 밥을 김치를 얹어 크게 한입 집어넣었다.
 
3.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
■ 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문장이 여러번 등장했다.
p252 ‘나는 이 집에서 돈을 개꿀로 벌고 있어요.’
P254 ‘나는 쉽게 돈을 벌고 그 사실에 아주 만족했다.’
P261 ‘서라 아빠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신용카드를 건네주었다. 영수증 안 주셔도 돼요. … 나는 내 고용주가 바뀐 것이 만족스러웠다.’
■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인간은 권력과 재물을 탐내지만 그건 자기 것이 아니다.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빈대처럼 붙어 생활하는 자들은 싫어한다. 그건 이 작품에서도 나온다.
p268 화자가 안방 침대에 누워있다가 갑자기 들어온 서라 아빠와 안방 문턱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서라 아빠가 말했다. “선생님, 미리 들어와 있는 건 괜찮은데 거실에 계셔주세요.”
■ 화자는 겉으론 편안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편하다. 왜 그럴까?
p270 ‘나는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서라가 내게 마음의 문을 더 열었나 보다 하고 들뜨거나 두근거렸을 텐데. 이상황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건 우리가 가짜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 자, 이제 위의 문장들에서 나타난 주제를 찾아보자.
돈을 쉽게 벌고 편안한 생활인 화자는 속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그건 자신의 꿈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는 목표를 잃어버린 채 서라 아빠와 결합하는 듯한 뉘앙스로 풍긴다.  하지만 이건 추측일 뿐이다. 현재 화자의 상황을 작가는 항아리에 빗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도 '항아리를 쓰고 있는 여인'이라고 정했다. 여기서의 항아리는 작품에서 나왔다시피 사용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을 말한다. 즉 편안한 생활을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들어있다.
 
4. 클라이맥스
클라이맥스는 주제를 강화하기 위한 설정이다. 대부분의 소설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이 클라이맥스를 준비해 둔다. 그게 바로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소설에서 클라이맥스는 어디일까? 나는 이 부분을 클라이맥스라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p281
“몇 초의 긴 시간 동안 야동 파일이 두어 개 열렸다. 길게 늘어진 파일 목록은 하나같이 제목에 가정부, 하녀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 영상 속 신음에 섞여 서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서라가 나를 찾고 있었다. 자신을 꺼내줄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 예상과 달리 서라는 내가 나갈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5. 주제를 강화하는 소도구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소설제목) : 화자 스스로 항아리를 뒤집어 썼다는 의미다. (개꿀로 돈을 버니까)
■항아리: 사용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p272에 나온다)
■냉장고에 붙은 사진: 베이비시터가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연극에서 두꺼비 역할: 무언가를 계속 애쓰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선 화자의 현재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