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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전교생의 사랑 / 박민정 / 작품분석 / 2024 이상문학상 작품집

■전교생의 사랑 / 박민정 / 작품분석 / 2024 이상문학상 작품집 중에서

 
1. 전체적인 느낌
 소설은 복선과 암시가 매우 중요하다. 독자는 화자의 진술을 들으면서 복선과 암시를 통해 맘껏 상상한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니까 다음에는 저렇게 하겠구나. 독자를 상상하게 만들고 계속 책장을 넘기게 하는 게 작가의 필력이다. 거기에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가는 몇 가지를 더 첨가한다. 그래서 이런 소설은 흥미롭다. 소도구는 물론 다양한 설정과 정교한 장치를 집어넣으면 소설이 훨씬 재미있어진다.
 내가 아는 박민정 작가는 이걸 잘 이용한다. 그는 페미니즘 작가이며 여성의 시각으로 불평등한 사회문제와 다양한 고민을 독자들에게 살포시 던져준다. 여기서 살포시, 란 말은 가볍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보면 전혀 가볍지 않다. 수십 킬로그램의 쇳덩이가 가슴을 누르는 것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예전에 읽었던 박민정의 작품들 『세실, 주희』도 그랬고, 『바비의 분위기』도 그랬다.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전교생의 사랑』의 중심사건은 작품에서 매우 중요하다. 화자가 말하는 영화의 ‘그 장면’은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계속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복선과 암시를 통해 그 장면이 대략 무엇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화자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화자와 세리도 그 장면을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이 작품처럼 주제를 대놓고 드러내는 소설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지만 이건 다르다. 소설을 읽는 맛이 난다. 두 번을 읽는데도 재미있다. 참고로 앞서 읽었던 김기태의 『팍스 아토미카』와 비교된다.
 
2. 서사
 (1) 나는 신이 선물한 것이 열다섯 살에 연기를 그만둔 것이라 믿었다. 나와 같이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세리는 뜨는 해였고 나는 지는 해였다. 인기가수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세리가 되었다.
 (2) 연기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온 나는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다. 우리 학교에 갓 부임한 체육 교사를 보며 학생들은 열광했으나 그는 점점 이상하게 변해갔다. 체육 교사는 흑화되기 전에 내게 줄넘기를 시켰다. 민지는 뭐든 잘할 수 있다고 칭찬했으나 나는 음료수만 마시고 줄넘기는 하지 않았다. 20년이 흐른 지금 체육 교사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 수 없다.
 (3) 나는 아역 배우에서 일반인의 삶으로 복귀했으나 세리는 그렇지 않았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세리는 실패한 아역의 나쁜 예시로 받아들여졌다. 20년 만에 우리는 대학로에서 만나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세리가 알려준 나무위키에 접속해 그때 출연했던 영화 ‘전교생의 사랑’을 검색해봤다. 내가 주연으로 출연한 ‘전교생의 사랑’은 1982년 일본 영화 ‘전교생’의 리메이크 작품이었는데 요즘이라면 절대 나오기 힘든 작품이라고 나무위키에 나와 있었다. 감독은 십 년 전에 죽었는데 어떤 배우도 조문을 가지 않았다. 놀라울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아역 배우였던 나와 세리는 ‘전교생의 사랑’이 청소년 관람 불가였기에 당시에는 볼 수 없었다. 홍 감독이 나와 세리에게 요구했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우린 다른 장면을 요구했고 다른 장면을 찍었다. 원작의 일본 배우는 이 장면을 찍고 나서 망가져 있을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당시 세리는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던 홍 감독과 염문이 있었다. 다시 만난 세리는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꺼냈다. 아역 시절로부터 이젠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말했다.
 (4) 세리와 나는 가까워졌다. 20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나 우리 두 사람은 ‘전교생의 사랑’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세리는 내게 ‘잊힐 권리’ 얘길 꺼냈다. 사실 우리는 그 장면을 돈 받고 판 배우였다. 촬영장에서는 세리가 칭찬받으면 이모가 화를 냈고 내가 칭찬받으면 세리 아빠가 눈을 내리깔았다. 세리는 만담가의 말을 인용했다. “이제는 너의 인생을 살아라” 영화 ‘전교생의 사랑’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으나 세리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5) 고전의 재해석이란 주제로 영상자료원에서 우리가 출연했던 영화 ‘전교생의 사랑’을 재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같이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세리는 사람들이 홍 감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현재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홍 감독이 원했던 원작의 그 장면은 소녀의 몸에 갇힌 소년이 발가벗고 웃으며 옥상에서 내달리는 장면이었다. 나는 홍 감독에게 벗을 순 있어도 웃을 순 없다고 말했고, 홍 감독은 웃지 않는다면 그 장면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때 나를 지켜준 건 세리였다. 세리는 다른 장면을 제안했고 홍 감독의 동의로 우린 그 장면을 찍었다. 나는 당시 세리가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혼자 망신당하는 것보다는 같이 망신당하는 게 낫잖아.” 세리는 영화가 상영되는 영상자료원에서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영화에 출연했던 이세리입니다. 제 친구 최민지도 여기에 같이 왔습니다. 저희는 오늘 이 영화 전체를 처음 봤습니다. 저희가 사랑하는 장면은 저희가 찍고 싶어서 찍은 게 아닙니다.” 극장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세리와 나를 지나갔으나 우리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 자유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3. 주제를 향한 문장
 중간쯤 읽으며 주제와 관련한 단어들이 튀어 올랐다. 그건 바로 ‘질투’와 ‘주체적인 인생’과 ‘잊혀질 권리’였다. 하지만 작품 후반부로 오면서 주제는 앞선 것과는 다르게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사실 소설에서 주제를 대놓고 드러내는 작품은 좋은 소설이 아니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주제가 뻔히 보여도 문장을 읽는 맛이 났다. 이 또한 작가의 필력이라고 생각한다.
 P192를 보면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이 나온다. 세리의 대사다.
 “저희는 오늘 이 영화 전체를 처음 봤습니다. 그래도 평론가님께서 말씀하신 그 내용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홍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십니까? 그 작품들을 감당할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어렵습니다. 저희, 그, 사랑하는 장면은, 저희가 찍고 싶어서 찍은 게 아닙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두 명의 사람이 떠올랐다. 미투로 영화계에서 보이지 않는 김OO 감독과 현재 여배우와 염문을 뿌리고 있는 홍OO 감독이다.
 P193에는 주제와 관련한 문장이 등장한다. 옛날 영주 선배님이 나에게 보낸 메일이다.
 “민지가 공부를 잘하고 학교에 적응을 잘한다니 너무 기뻤단다. ……… 나는 광대가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선택할 겨를도 없이 배우의 삶을 살았고, 어른들의 욕심과 때론 광기에 마치 소품처럼 이용되기도 했다는 걸 안단다. 민지야, 요즘엔 드라마나 영화에서 엔딩에 꼭 이런 문장을 붙인다. ‘아역 배우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고 심리치료를 병행했다’고 말이야.”
 이 부분에서 ‘어른들의 욕심과 때론 광기에 마치 소품처럼 이용되는 미성년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게 이 작품의 주제다. 우리는 미성년자를 발가벗기고 그걸 예술이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거기에 감추어진 그들의 수치심과 상처를 보지 못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야하고, 천박한 게 과연 예술인가? 돈벌이를 위해 원하지 않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잘못된 걸 알면서도 묵인하는 주변 사람들이 어른인가?
 
4. 클라이맥스
 클라이맥스는 작품의 의도를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면이다. P194의 중간 부분은 주제를 향해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다.
 성범죄를 당했다는 것까지 보여주려면 옷을 찢어 놓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 지껄일 때, 영주 선배님은 세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걸 왜 찍는지 네가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