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지만 / 양기연 / 작품 분석 (202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 전체적인 느낌
예전에 어느 선배네 집에서 녹차를 마신 적이 있다. 그때까지 달달한 믹스커피와 캬라멜 마키아또만 줄기차게 마시던 나는 매우 단순하고 충동적인 인간이었다. 그날 선배는 내게 TV에서 봤던 것처럼 전통차와 관련된 다기를 이용해 차를 대접했는데 그때 선배를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첫 번째 차맛 보다 두 번째 우려낸 차 맛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텁텁하고 쓴맛이 강했지만 두 번째는 단맛이 나며 향기가 입안에서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시작부터 차 맛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작품이 거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 땐 에이, 이게 뭐야? 재미도 없고 술에 물 탄 듯이 그저 밍밍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두 번째 읽을 땐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물 위에 뜬 거품을 모두 걷어내고 글을 쓴 것처럼 감정을 모두 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의 감탄사가 이곳저곳에서 터졌다. 아, 이런 장점 때문에 이 작품을 심사위원들이 신춘문예로 뽑아준 것이구나.
작품분석을 위해서 이 소설은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나는 ‘크로노덱스’이고 또 하나는 '시진'이란 존재다. 인터넷으로 ‘크로노덱스’를 검색해보니 ‘홍콩의 한 여행 다이어리 사용자가 개발한 시각적인 데일리 스케줄 표’라고 나와 있다. 나는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유추해보면 일종의 방학 일과표와 비슷하다는 것으로 풀이했다. 그리고 시종일관 등장하는 ‘시진’이란 존재, 이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계속 이런 의문들이 들었다. 시진과 화자는 왜 이별했을까? 시진은 화자를 어떤 존재로 생각했을까? 두 사람은 정말 사랑했을까? 이와 같은 궁금증을 작가는 할아버지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연스레 꺼내 놓고 있다. 그러니 할아버지의 말을 절대로 흘려들어선 안된다.
2. 주제를 향한 문장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은 할아버지의 감정이다. 여기서 할아버지의 감정이란 애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매우 슬픈 심정인데 그것과 함께 작품속에서 화자의 내면도 계속 등장한다. 그럼 작가는 왜 두 개를 비슷하게 겹치게 만들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것이 주제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말하는 화자의 '내면'이란 애인이었던 '시진과의 갈등'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왜 헤어졌을까, 궁금해진다.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진의 캐릭터를 살펴봐야 한다.
기차역 매표소에선 일하는 시진은 청소년 할인권을 발급할 때 교복을 입고 있어도 예외 없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게는 경로우대권을 요구 한다. 이게 시진의 캐릭터다. 즉 화자의 애인인 시진은 융통성이 없다. 추운 날씨에도 여자인 화자를 걱정해주지 않고 자기 편한대로 공원을 걷는다. 이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란 뜻이다. 그래서 화자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고 작품 속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이유로 이별한 듯 보인다.
자, 이제 주제와 관련한 공통점을 찾아보자. 할아버지는 사귀던 애인이 죽었고 화자 역시 애인과 헤어졌다. 이게 두 사람의 공통점이고 또 다른 공통점은 영화감상이다. 화자와 할아버지는 영화 감상을 좋아하는데 이건 두 사람의 취미가 같다는 뜻이다. 이를 증명하는 듯 P341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를 키운 어른이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 사람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 있다. 나는 할아버지의 붉어진 귓바퀴부터, 입꼬리에서 턱으로 옅게 잡힌 주름들까지 찬찬히 들여다봤다.”
이런 문장을 통해 이 작품의 주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클라이맥스에서 명확히 주제를 드러낸다. 화자는 시진이 기차역 매표소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직원을 통해 알게 되었고 기차역의 직원은 화자에게 시진이 남긴 짐을 치워주길 부탁한다. “놓고 간 게 뭐예요?”라는 화자의 질문에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몇 개 없긴 해요. 볼펜이랑, 수분크림, 사진, 이런 것들이요.”
여기에 아주 중요한 물건이 등장한다. 시진이 놓고 간 수분 크림이다. 수분 크림은 화자가 선물한 것이고 그걸 놓고 갔다는 뜻은 시진이 화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주제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의 작가는 독자인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만 같다.
“당신은 상대의 감정을 생각해주고 있나요?”
3. 클라이맥스
앞서 말했듯이 P345 자신과 사귀었던 시진이 퇴직한 후 챙겨가지 않은 물건이 있다는 얘기를 화자가 듣는 부분이다. 놓고 간 게 뭔가요, 라는 화자의 질문에 직원은 말한다.
“몇 개 없긴 해요. 볼펜이랑 수분크림, 사진… 그런 것들이요.”
4. 주제를 강조하는 소도구
■빨간색 체크 무늬 셔츠: 상대를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수분크림: 시진이 화자를 사랑하지 않았던 감정을 나타내는 물건
■크로노텍스: 인생이란 계획표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상징한다.
■소설제목: '알 수 없지만' 역시 주제를 확인시켜 주는 도구이다.

'소설 작품 분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소설 / 박서련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0) | 2022.07.22 |
---|---|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 김병운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0) | 2022.07.17 |
27번 / 유주현 / 작품분석 / 2022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0) | 2022.05.14 |
V 난청 / 박정수 / 작품분석 /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0) | 2022.05.07 |
모카를 위하여 / 박문후 / 202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0) | 2022.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