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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그 소설 / 박서련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그 소설 / 박서련 / 작품분석/  2022년 올해의 문제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총평

 작품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허허허, 웃음이 나온다. 이건 비웃음이 아니라 소설이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의미였다. 소설에서의 최고의 덕목은 새로움 참신함이다. 그걸로 따진다면 이 작품은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점이 전문가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온몸의 힘을 빼고 그냥 일상을 쓰듯이 써나간 작품이지만 주제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일기를 쓰지 않지만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쓴 글에 웃음이 나온다. 내가 이때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솔직해서 좋다. 이렇듯 일기의 장점은 글을 쓰고 있는 당시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이 그렇다. 일기 형식처럼 쓰다 보니 눈에 띄는 문장이나 멋스러운 문장이 없음에도 늪에 빠진 것처럼 조금씩 빠져든다. 그건 바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자, 그럼 이제 이 작품에 대해 하나씩 뜯어보자. 우리는 먼저 소설의 앞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앞부분은 마지막 부분과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이 작품 시간의 서사는 그 남자(작품에서는 그 새끼라고 나온다)에게 전화를 받고(시작 부분) 전화를 끊는(마지막 부분) 아주 짧다. 5분이나 될까?

 중요한 것은 또 있다.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쓰기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 이 작품은 메타 소설이기도 하다. 보험회사 설계사의 목표 달성’처럼 소설가는 청탁받은 원고 마감’이 중요한 과제. 작가는 이걸 앞부분에 등장시키며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소설이 진행되며 작가는 표절’과 남성과 여성의 불공정’(남자는 첫 경험을 자랑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이란 카드를 꺼낸다. 재미도 있으니 계속 책장이 넘어간다. 오호라, 계속 따라오라는 얘기군. 좋아. 신선한데? ?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작품은 끝나 있다. 이게 뭐지? 이걸로 끝인가? 좀 심심한데. 작가가 의도했던 뭔가가 있을텐데 내가 그걸 찾아내지 못했겠지. 처음부터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 보자.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니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드러났다.

 

2.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

 주제에 관해서 우선 처음 읽을 때 떠오르는 단어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작품의 앞부분부터 차례로 나열한다. 표절과 관련한 의도치 않은 피해와 남자와 여자가 첫 경험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불공평 과 낙태의 주인공인 그 남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타나는 무책임’이. 주제와 관련한 단어들을 쭉 펼쳐 놓았으니 거두어들여보자. 이 작품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말한다면 그건 아마도 내 얘기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물론 누군가는 낙태에 대한 얘기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주제를 강화하는 소도구다. 작가는 첫 문장부터 내 얘기로 시작해서 시종일관 내 얘기란 말을 반복했지 않은가.

 P94를 보면 이것은 내 얘기이고, 내 소설이며, 내 얘기가 아니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바꾸면 이런 뜻이 된다.

 “우리는 모두 진실과 허구의 경계에 산다. 진실과 허구가 분명하지 않은데 왜 그걸 알려고 드는가.”

 진실과 허구의 경계는 결국 소설의 본질이다. 그걸 뒷 받침 하듯 P95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낳은 미래가 두렵기도 하고 낳지 않은 미래가 두렵기도 해. 그냥 누가 계단에서 나 좀 밀어주면 안 되나? 층계참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어 볼까, 누가 지나가다가 툭 치면 굴러버리게? 그때 했던 이런 생각들을 내가 너한테 말하면 네가 과연 이해할 수 있겠니. 적당히 말을 돌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문장에서 주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화류계 언니와 다른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그들의 등장과 행동이 곧 주제이니까. 작품 속에서 내 소설을 읽은 화류계 언니가 말한다. “그거 혹시 내 얘기 아니니? 내 얘기 같던데.” 우리는 여기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소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있다. 엄마는 내 소설을 읽고 전화에 대고 말한다. “어떤 새끼가 그랬어?” 역시 웃음이 나온다. 소설인데 엄마조차도 그걸 내 얘기라고 생각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지막에는 아예 주제를 드러낸다. 화자를 임신시켰던 그 남자가 내가 다 폭로할 거야. 넌 낙태 살인자라고.” 말한다. 글을 읽으며 뭐 이딴 녀석이 있을까 싶었다. 내가 이 남자를 보며 느낀 점은 아주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지면 추해진다는 사실이다. 이게 주제다. 작품 속에서 이들은 모두 자신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말한다.

 

3. 클라이맥스

 클라이맥스는 작품의 주제에 말뚝을 박는 역할이며 알쏭달쏭한 주제에 방점을 찍는 것과 같다. P97의 아래에서 다섯 번째 줄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건 소설이야.”

 소설인데 왜 그대로 받아들일까. 이걸 다른 말로 바꾸면 이렇다. 이건 허구이니 네 방식대로 생각하지 말라. 작가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네 방식대로 함부로 생각하지 마.”

 

4. 주제를 강조하는 소도구

 ■내 소설: 허구이거나 진실이기도 하며, '진정한 소설쓰기'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기도 하다.

 ■낙태 수술: 진짜였지만 진짜가 아닌 것을 상징한다. 화자가 병원에서 받은 수술은 낙태 수술이 아니라 계류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