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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다 / 정지돈 / 작품분석

■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다 / 정지돈/ 2022현대문학상 작품집 중에서

 

1. 전체적인 특징

에피그라프를 읽는 순간부터 이 소설은 분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진보적 낙관주의자라는 단어가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 내 머리를 둥둥 떠다녔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선호하는 음식, 책이나 소설도 마찬가지다. 물론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나 그런 소설의 유형만을 접하게 된다면 그건 몹시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팔은 결국 안으로 굽으니 어쩌겠는가. 서두에 내가 왜 이런 장황한 얘기를 꺼냈는가 하면 이 작품이 바로 그것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일단 문장을 보면 멋을 부리거나 화려하진 않다. 그러나 웬걸. 작품을 다 읽었는데도 흙탕물 속에 있는 것처럼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제는 물론 문장 자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 내가 아무래도 내공이 덜 쌓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사 역시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었고 읽는 속도도 나지 않았다. 이게 주제와 무슨 관련이 있다고 여기에 넣었을까? 게다가 낯선 지명, 낯선 이름, 낯선 용어, 게다가 공산당이 어쩌고좌파와 우파가 어쩌고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작품을 졸음 운전하는 사람처럼 가수면 상태로 읽었다. 그래서 타 작품보다 두 배의 시간이 지체됐다. 한번 읽고 나서 두 번째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계간지에서 봤다면 집어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문학상이지 않은가? 평론가들이나 소설가들이 뽑은 작품이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거북할 정도로 불편한 것을 참아가며 다시 한번 책을 펴고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2. 주제를 향한 문장

, 하는 한숨이 나왔다.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이 다 읽고 보니 체크가 안 돼 있었다. 그건 찾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하긴 내용을 이해 못 하는데 주제를 어떻게 끄집어낼 수 있겠는가? 엠은 자신이 타던 파리의 공용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그걸 찾아주겠다는 사람이 대신 조건이 있다며 록 페스티벌에 엠을 데려간다. 그곳에서 엔씨란 남자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자전거를 타고 파리에 간다. 그곳에서는 엔씨가 생활하는 지하 묘지에서 이틀을 지낸 엠은 잃어버린 자전거를 분더캄머란 지역에서 찾았다.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엠이 찾은 자전거는 자신이 잃어버린 자전거가 아닌 일련번호가 다른 자전거였다. 화자가 KFC에서 백인 사내에게 위협을 당했을 때 여자 임에도 선뜻 나선 중년의 백인 여성과 엠을 자신의 자전거에 태우고 파리까지 간 엔씨를 봤을 때 이 작품은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려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읽으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왜 제목을 지금은 영웅이 행동할 시간이다라고 정했을까, 하는 점이다. 여기에 영웅이 있나? 그렇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는 영웅은 이제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진보적 낙관주의자에게 죽음을 선언해줄 사람이었다. 즉 엔씨 같은 MZ세대의 인물, 신자본주의의 노예가 아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지 않고, 공용 자전거로 도심을 활보하는 그들을 영웅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승용차를 타지 않아도 지적으로 풍요롭고 국가의 장벽 같은 것을 못 느낄 정도로 정말 자유롭다. 애국심을 빙자한 집단적 책무 따위의 이데올로기 등에 얽매이지 않는 삶. 작가는 혹시 그런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소비 지향적인 생각을 밀어내려는 것일 수도 있고. 이쯤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소설 제목의 영웅은 엔씨처럼 지구의 환경을 고민하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을 지목하며 작가는 그런 사람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지목하고 있다고.

 

3. 소도구

탄소 제로의 공용 자전거(매우 중요) : 파리는 물론 런던에서도 자동차로 여행하지 않고 공영자전거로 여행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곰곰히 생각해봤다. 탄소 제로, 미니멀리즘 등과 같은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상기시키고 있다.

 

4. 클라이맥스

갈등 최고조의 클라이맥스는 없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엔씨가 자동으로 번역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체로 봤을 때 엔씨 자신이 번역한 것으로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