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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쿄코와 쿄지 / 한정현

쿄코와 쿄지 / 한정현 / 작품 분석 (2022 현대문학상 수록집)

 

1. 전체적인 총평

다른 단편소설과 달리 상당히 긴, 한 호흡으로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중편의 소설이었다. 때론 지루하기도 하며 때론 흥미 있는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글쎄, 이렇게까지 길게 쓸 필요가 있었을까, 너무 많은 에피소드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작품 속에서 문장의 느낌은 내가 아직 문학의 깊이가 낮아서인지 모르지만 읽는 맛이 나질 않았다. 게다가 서사 역시 맛깔스럽게 착착 감기는 소설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작품 전체에서 묘한 매력을 풍기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2. 주제를 향한 에피소드와 문장들

작품을 읽다보면 초반에는 성에 대한 정체성이 떠오른다. 세 명의 여자와 여자가 되고 싶은 한 명의 남자. 하지만 작품의 중반쯤 읽으니 성에 대한 정체성은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니었다. 가만, 그 전에 일단 인물들의 이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화자는 김경녀에서 김경자로 개명을 한다. 왜 그랬을까? 그건 가부장시대에서의 공통적인 여자들의 마음이었다고 해두자. 화자 역시 그런 심정이었으니까. 여기에 등장하는 네 명 중에 영성이란 남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유일한 남자다. 네 명은 우정을 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각자의 이름 뒤에 를 붙인다. 아들 대접을 받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화자는 아들 ()’가 아닌 스스로 ()’를 떠올린다. 이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의미가 있으니까. 실제 네 명의 인물이 여자로서의 한계와 불이익, 운명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한다.

작품 중반으로 가며 소설은 에 대한 얘기에서 5.18로 이야기를 이동시킨다. “엄마는 그때 어디에 있었어?”라는 딸의 물음과 어느 정신병원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채 발견된 미자가 화자에게 정말 다행이야. 네가 그때 없어서.”라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자 역시 화자에게 경자야, 네가 아무것도 보지 않아서 다행이야.”라는 말을 건넨다. 5.18에 없어서 다행이라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런 모든 말들이 등장 인물이 아닌 마치 내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5.18 때 어디에 있었나요?

작품을 다 읽고 나서도 그 말들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혹시 작가는 글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3. 서사의 특징

초점은 두 개로 나뉘어 있다. 앞장은 조기 치매를 앓고 있는 과거의 나다. 그때 기억에 머물러 있는 나(경자)가 딸인 영소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이고, 뒷장은 딸(영소)이 자신의 초점에서 진술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매우 많다. 화자의 친구들, 광주 민주화 운동, 딸의 출생 배경 등이다.

 

4. 주제 대한 나의 견해

이 작품을 다 읽고 난 뒤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나과 상관 없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그걸 잊는다면 우리는 슬퍼질 것이다. 그런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내 심장이 뜨끔해진다. 는 과연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폭력은 어느 시대든 일어날 수 있다. 그걸 보고 당신은 침묵하겠는가? 특히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폭력은 진한 여운을 남겼는데 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의 주제는 세 번이나 등장하는 문장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잊고자 하는 것에 보복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 문장을 되새겨 보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끄집어내 독자에게 던져 준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과거와 현재, 시간 속에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어쩌면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5. 주제를 향한 소도구

소도구는 콕 집어 이거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제목 쿄코와 쿄지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경자경자상무슨 뜻일까? 여러 차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는 결국 정체성이란 결론을 내렸다.

 

6. 기타

이건 작품과 관련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최근 어느 모임에서 회원중의 한 사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5.18'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는 자꾸만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썼다. 공식석상은 아니었으나 여러사람 앞에서 '광주사태'란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에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그는 한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그렇게 말했다. 광주사태가 어쩌고. 이거 지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몇 번을 망설였다. '광주사태'가 아니고 올바른 표현은 '광주 민주화 운동'입니다. 그러나 내가 지적을 하는 순간 그가 사람들에게 받아야 하는 따가운 눈총과 민망함이 떠올라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애써 눌렀다. 자리를 파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내 행동에 대해 무척 후회했다. 왜 그에게 제대로 된 지적을 하지 못했을까? 곧이어 나에 대한 실망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먹었다. 다음에 그를 만난다면 조용히 다가가 적절하지 못했던 단어 사용에 대해 충고해야겠다고. 내가 예의를 지켜 정중히 말한다면 그도 기분좋게 받아들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