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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어떤 진심 / 안보윤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소설집 ■어떤 진심 / 안보윤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느낌 작품을 읽으면서 커튼이 가려진 캄캄한 방안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런 불빛이 없는 곳에서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가려진 커튼 사이로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유란이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사이비 종교 집단에 아이들을 포섭해서 데려오는 여자. 그런데 문장을 읽어내려 갈수록 모래를 씹은 것처럼 입안이 꺼끄러워졌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오유란의 감정에 동화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글속의 주인물에게 공감을 느끼는 것은 작가에게 최고의 칭찬이다. 어릴 적 교회에 엄마와 짐을 싸들고 갔을 때의 유란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열매들을 교회로 데려왔다. 하지만 유란은 점점 흔들린다. 작.. 더보기
아주 환한 날들 / 백수린 / 작품 분석 / 2022 이상문학상 작품집 ■아주 환한 날들 / 백수린 / 작품 분석 / 2022 이상문학상 작품집 중 1. 전체적인 느낌 단편 소설은 우리의 인생 중에서 나이테처럼 한 단면을 드러낸다. 우리네 삶의 일부분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캐릭터와 등장인물의 모든 걸 보여줘야 하기에 고민이 생긴다. 그리고 독자는 작가가 펼쳐내는 짧은 생의 한 단면에서 공감할 수 있어야 좋은 글이다. 글을 쓰는 작가는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작품 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은 아주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주인공인 그녀(3인칭)의 행동과 내면 심리가 공감대를 얻으며 가슴이 뭉클했기 때문이다. 나이든 노인의 모습과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겪는 모습을 보며 맞아, 우리 엄마도 이렇게 악착같이 사셨어, 꼭 우리 엄마를 .. 더보기
복도 / 강화길 / 작품분석 / 2022 이상문학상 작품집 ■복도 / 강화길 / 작품분석 / 2022 이상문학상 작품집 중에서 1. 전체적인 느낌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작품을 다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 잘 쓴 작품은 아니구나. 그러나 매번 그렇지만 좋은 소설은 두번째 읽을 때는 더좋다. 이 작품 역시 다시 읽어 보니 처음 읽을 때와 달랐다. 작가는 독자의 몰입에 혼선을 주려는 의도를 했던 것인지 처음에는 서사가 갱엿처럼 쩍쩍 달라붙지 않았다. 작가는 다시 읽어봐라. 그럼 안 보였던 것이 보일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긴 예전에 읽은 작품 중에는 아예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도 많았다. 그런 작품을 읽다 보면 머리도 아프고 서사가 달라 붙지 않으니 독자는 짜증 날 수 밖에 없다. 오해는 마시라. 이 작품이 짜증 나는 작품이란 뜻은 아니니까.. 더보기
미조의 시대 / 이서수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미조의 시대 / 이서수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으로 느낀 점 작품을 처음 접하는 작가였지만 글을 참 잘 쓴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끓인 사골국물을 먹은 것처럼 마지막까지 자꾸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잘 쓰려는 기교를 부리지 않았음에도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멋진 문장도 많이 등장했다. 이런 작품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일종의 자학이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타고 나는 건가? 예전에는 노력하면 나도 될 것이라 믿었는데 이런 작품을 읽을 때마다 매번 오르지 못할 나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만 봐도 그렇다. 아주 쉽게 온몸의 힘을 빼고 글을 쓴 것 같은데도 다 읽고 나면 결코 가볍지가 않다. 아무튼 이 시대 청년들의 마음을 읽는.. 더보기
두 개 골의 안과 밖 / 서이제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두 개 골의 안과 밖 / 서이제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느낌 고등학교 때 한동네에 살던 형이 팝송을 무척 좋아했다. 그 형네 집에 놀러 가면 전축 옆에 해적판(빽판이라고 불렀다) 외에도 당시에 1만 원씩 하던 LP판들이 수북하게 꽂혀 있었다. 어린 나이였던 나는 용돈을 받으면 ‘월간 팝송’과 LP음반을 사는 그 형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형에게 이렇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형, 팝송을 왜 좋아하세요? 나의 질문은 좋아하는 것에 그 많은 돈을 쓰는 형에 대한 질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그 형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그 형의 대답은 40년이 지났음에도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형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응, 취향이란다." 아, 그때 그 형의 입에서.. 더보기
그 소설 / 박서련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그 소설 / 박서련 / 작품분석/ 2022년 올해의 문제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총평 작품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허허허, 웃음이 나온다. 이건 비웃음이 아니라 “소설이 이럴 수도 있구나” 라는 의미였다. 소설에서의 최고의 덕목은 ‘새로움’과 ‘참신함’이다. 그걸로 따진다면 이 작품은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점이 전문가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온몸의 힘을 빼고 그냥 일상을 쓰듯이 써나간 작품이지만 주제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일기를 쓰지 않지만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쓴 글에 웃음이 나온다. 내가 이때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솔직해서 좋다. 이렇듯 일기의 장점은 글을 쓰고 있는 당시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 더보기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 김병운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 김병운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중에서 1. 전체적인 총평 저녁 반찬이 마땅치 않아서 며칠 전에 된장찌개를 끓였다. 다 끓인 후 맛을 보니 입에 착, 붙는 맛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왜 맛이 안 날까? 그때 뭔가가 퍼뜩 내 머리를 스쳤다. 그렇지, 그게 빠졌구나. 나는 씽크대의 수납장을 열어 그것을 꺼냈고 한 숟가락을 담아서 된장찌개에 넣었다. 아, 그제야 된장찌개의 깊은 맛이 났다. 어떤 글은 밍밍한 된장찌개 같은 소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글은 깊은 맛이 나는 된장찌개 같은 작품도 있다. 지금 내가 얘기하는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가 바로 후자에 속한다. 참고로 앞서 된장찌개에 내가 넣은 것은 ‘쇠고기 다시다’이다. MSG를 된장찌개에 넣고 안 넣고의 차이.. 더보기
알 수 없지만 / 양기연 / 작품분석 / 202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알 수 없지만 / 양기연 / 작품 분석 (202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 전체적인 느낌 예전에 어느 선배네 집에서 녹차를 마신 적이 있다. 그때까지 달달한 믹스커피와 캬라멜 마키아또만 줄기차게 마시던 나는 매우 단순하고 충동적인 인간이었다. 그날 선배는 내게 TV에서 봤던 것처럼 전통차와 관련된 다기를 이용해 차를 대접했는데 그때 선배를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첫 번째 차맛 보다 두 번째 우려낸 차 맛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텁텁하고 쓴맛이 강했지만 두 번째는 단맛이 나며 향기가 입안에서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시작부터 차 맛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작품이 거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 땐 에이, 이게 뭐야? 재미도 없고 술에 물 탄 듯이 그저 밍밍하네, 라고 생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