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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분석

해변의 피크닉 / 손보미 / 작품분석

■해변의 피크닉 / 손보미 / 2022 현대문학상 작품집 중에서
 
1. 전체적인 느낌
중편 소설이다 보니 일반적인 단편소설보다는 읽는 시간이 두 배나 더 걸렸다. 이 작품은 심미적 거리가 매우 좋다. 적당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타일 작업할 때 마지막에 공간을 메워주는 후반 작업처럼 문장과 문장의 빈공간을 꽉꽉 채워준 느낌이 든다. 속이 꽉 찬 김장배추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화자의 진술이 참 맛깔스럽다. 하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자꾸 이런 의문이 들었다. 화자는 지금 열한 살의 초등학생인데 이 나이에 이렇게 섬세한 관찰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도 중요한데 이렇게 문장을 압축시키면 상상의 폭을 좁혀주는 거잖아?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글을 읽는 사람마다 느낌은 다를 테니까. 그리고 열한 살이라고 관찰이 뛰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 읽고 나니 잡힐 듯 하지만 잡히지 않는 주제가 꾹꾹 밟아놓은 문장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난다. 그게 작가가 주장하는 주제와 관계가 있다. 작가는 독자를 대상으로 해변에서 연인들이 “나 잡아 봐라.” 하는 것처럼 작품의 주제를 숨겨 놓았다. 독자는 문장과 서사를 통해 보물찾기 하듯 주제를 찾아야 한다.
 
2. 서사 구조
1) 내가 열한 살 때 정우맨션으로 이사했을 때 장을 보러 나간 어머니가 어떤 아주머니와 돋보기안경을 쓴 아이를 집에 데리고 온다. 배 부분이 너무 꽉 끼어 있어서 불편해 보이는 옷을 입은 아이에 비해 아이의 어머니는 너무 잘 차려입어서 나는 충격을 받는다. 나는 외모에 신경 쓰는 아이인데 별로 예쁘지 않다는 내 말에 엄마는 외모에 신경 쓰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2)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했지만 일곱 살 이후 10년 동안 여름방학에 할머니네 집에서 생활하게 한다. 아버지는 갑자기 죽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했었다. 거대한 할머니네 집에 갈 때 엄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그분들 기분은 거스르지 마라.”고 당부한다.
3) 할머니는 해변으로 피크닉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할머니의 집에 갔을 때 삼촌은 내게 “너희 엄마는 대단해. 여름마다 너를 여기에 보내는 대가로…”라고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한다. 나는 ‘적막’과 ‘과묵’이란 어려운 단어를 쓰며 삼촌에게 인정받는다. 삼촌은 식사시간에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제안하지만 오히려 아주머니가 거절한다.
4) 아들을 증오하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경멸하는 아들. 그 속에서 나는 삼촌에게 인정받기 위해 밤중에 어둠 속에서 삼촌을 떠올리며 100개가 넘는 문장을 외우고, 2층으로 올라가 삼촌의 방을 두드린다. “난 네 아빠의 반쪽짜리 동생”이라며 삼촌은 “너희 엄마가 받은 게 뭔지 궁금하냐?”고 묻는다. 나는 할머니와 해변으로 소풍을 간다며 반쪽짜리 삼촌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한다.
5) 해변으로 할머니와 피크닉을 갔을 때 삼촌이 여자친구와 함께 찾아온다. 나는 삼촌이 데려온 여자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할머니는 말한다. “네가 남자아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6) 해변의 피크닉의 주인은 할머니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불청객이라고 느낀다. 해변가 피크닉에서 이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모욕당한 기분을 느낀다.
7) 돌아오는 차안에서 할머니는 내게 울지말라고 다독인다. 너희 엄마는 너를 팔아넘긴 게 아니라 말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런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날 밤 나는 단어들을 적어놓은 노트를 찾아 한 장씩 찢어 버린다.
8)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고 엄마에게 폴로 티셔츠를 입은 그 아이 소식을 듣는다. 그 애의 어머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데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에게 커서 “배신자가 될 거”라고 말한다. 진짜 배신자.
 
3. 주제를 향한 문장
작품을 읽다보니 굵게 표시된 글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읽으면서 궁금했다. 이게 뭘까? 굵게 표시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러다가 내 방식대로 주제를 찾아보자고 방향을 바꾸었다. 주제를 알기 전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 있다.
 "화자인 나는 왜 삼촌과 대화 하려고 100개가 넘는 단어로 문장들을 만들어 외웠을까?"
 거기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인정받고 싶어서다.
 "그럼 삼촌은 왜 화자에게 “자신은 반쪽짜리”라는 말을 했을까?"
 그건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난봉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촌은 왜 화자에게 “너희 엄마는 대단해. 너희 엄마가 여름마다 너를 여기 보내는 대가로.”라고 말을 하는데 이건 무슨 뜻일까?
 내 생각에는 ‘인정’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엄마 아빠의 결혼을 반대한 사람이다. 큰아들이 죽고 그의 딸인 화자가 집으로 오는 것을 인정한다. 이는 곧 엄마를 며느리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엄마가 화자에게 강조했던 “그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마.” 라는 말도 결국 인정받으라는 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다른 생각이 들까? 너희 엄마가 너를 여기로 보낸 대가로. 이 얘기를 다르게 해석하면 “너희 엄마는 너를 여기 보내고 한 달 동안 자유를 누리는 거야.” 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고유한 결정을 내리며 사는데, 이 소설은 그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즉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이나 작품을 읽었지만 작품이 길어서 또 읽고 싶진 않았다. 만약 한 번 더 읽는다면 그런 것이 확실히 드러날지도 모른다. 다시 책을 펴려다가 나는 읽는 걸 포기했다. 두 번 읽으면서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벌에 쏘인 것처럼 눈도 아팠다.
 
4. 클라이맥스
“엄마, 내가 커서 뭐가 되고 싶은 줄 아세요? 뭐가 되고 싶은데. 나는 커서 배신자가 될 거예요. 배신자.” 여기가 클라이맥스다. 그런데 배신자는 무슨 뜻일까? 삶에 끌려가지 않고 진취적인 삶을 살겠다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5. 소도구(주제를 향한)
■줄무늬가 들어간 폴로 티셔츠를 입은 아이: 하나에만 맞추지 말라. 삶은 선택의 연속이니까.
■충청도에 사는 노처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6. 제목
■해변의 피크닉: 삶의 주인, 주최자,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