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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내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잠결에 슬리퍼 끌리는 소리를 들었다.

발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더니 찬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간호사였다. 잘 주무셨어요. 혈압체크 좀 할게요.

새벽 여섯시가 되면 그녀들은 병실을 찾아온다.

정상이네요. 간호사가 업무적인 음성을 내뱉는다.

그녀가 나간 뒤 옆 침대의 노인이 가래를 끓어 올린다.

카악, 가래는 낚시바늘에 걸린 고기처럼 노인의 목에서 나오지 않는다.

한번, 두번, 가래 끓는 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노인은 답답함에 몸부림 칠 것이고 침대 옆에 있는 응급벨을 누를 것이다. 그럼 간호사가 가래를 빼는 기계를 들고 오겠지.

벌써 일주일째 똑같은 상황이 반복 되고 있다.

나는 512호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간다.

병실 복도는 이른 아침에도 운동하는 환자들로 북적인다.

이 사람들의 마음은 오직 하나다. 건강한 몸.

잘 잤어요? 휠체어에 탄 남자가 오줌통을 들고가며 나에게 말을 건다. 공사장에서 추락한 남자라고 했다. 

어젯밤엔 물을 많이 마셨는지 오줌통에 노란 액체가 유난히 많다.

몇 걸음 옮기지도 못했는데 오른쪽 다리에서 통증이 시작된다.

뽀족한 쇠망치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때리는 것 같다.

아으으으. 벌어진 내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온다.

두손에 힘을 주며 장딴지를 주무르지만 통증은 가라 앉지 않는다.

의사는 요추간판 탈출증이라고 말했다. 수술 하셔야 합니다. 나는 의사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몇 전에도 허리가 아팠지만 침을 맞고 괜찮아졌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통증을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병원을 다시 찾아왔다. 너무 아파서 의사에게 살려 달라고 말했다.

그나마 통증을 하루라도 버틸수 있었던 건 인내의 결과였다.

 

입원 첫날 저녁밥을 먹는데 갑자기 서러워졌다.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었고, 아파서 그런것도 아니었고,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자꾸 시련을 주는 신이 미웠다.

바보처럼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몸뚱아리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던가.

20년 동안 중풍을 앓았던 아버지는 누워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 이제는 건강한 몸이 될 수 없다는 서러움.

내가 지금 그렇다. 아무 것도 약속 할 수 없는 기약 없는 내일.

차라리 기한을 주고 그때까지 견디라고 한다면 견디겠는데 알 수 없다.

내일이 없는 암울한 미래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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