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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경험을 통해 얻는 것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필사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좋은 문장을 보면 옮겨 적는 작업이다.

나도 필사 노트가 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웃지 못할 일이 생겼다.

낮에 쓴 글을 다시 읽어 보기 위해 가방을 열었더니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노트가 타인에게는 평범한 노트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몇 달 간의 기록이었으니 찾아야만 했다.

어디에 있는 것 일까? 기억을 따라가 보았다.

오전에 대전대 강의를 끝내고, 오후에는 지산 도서관에 앉아 올해의 문제 소설을 읽었고...

그러다가 필사를 했고...저녁에 집에 왔다. 그런데 없다?

대전대 도서관에 놓고 왔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총알 같이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차에 시동을 걸며 생각했다. 지금 가도 있을까?

누가 쓰레기통에 버린 건 아닐까? 청소 아줌마가 쓰레기통을 치웠으면 어쩌지? 별별 생각이 다들었다. 

거리엔 플라타너스 잎들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나뒹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산 도서관으로 뛰어 들었다.

그런데... 거기.... 내가 앉았던 자리에... 노트 두권이 그대로놓여 있었다.

마치 어디 갔다 왔어요? 하는 것 처럼. 와락 끌어 안았다. 미안하다.

나이가 들어서 자꾸 깜빡 깜빡 하는구나.

문득 그 일이 떠올랐다. 수업자료가 담긴 USB를 집에 놓고 강의를 하러 갔던 날.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눈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USB가 없는 상태로 세시간 동안 떠들 수 있을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시간만 때우는 성의 없는 강의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다시 집에 다녀오자. 그게 학생들에게 예의다.

왕복 한 시간이 조금 넘을 거란 생각이 들어 학생들에게 솔직히 말했다.

"어제 수업 준비한 USB를 집에서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갔다 올 테니 한 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요. 죄송합니다."

신호고 뭐고 없었다. 총알같이 집으로 달려 컴퓨터에 꽂혀 있는 USB를 들고 다시 학교로 갔다.

무사히 수업을 마쳤고 그 일은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런데,

기말고사 답안지에 한 학생이 이렇게 적었다.

"그날 저는 두 가지가 기분 좋았습니다. 교수님께서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것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시 집에 다녀 오는 모습이요."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솔직하게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면 용서되지 않을까.

진정으로 사과하는 것도 필요 하겠지.

그 일을 계기로 USB를 거듭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백업용 USB를 하나 더 가지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