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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이 보다 더..

 

12월의 찬바람이 거칠게 부는 날이었다. 전날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거리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다. 모니터에 엑스레이와 엠알아이 사진이 연속적으로 지나갔다. 40대 초반쯤 되었을까. 체구가 무척 작은 의사였다. 척추뼈 사번과 오번 사이의 디스크가 심하게 튀어나와 신경을 누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증이 오는 겁니다. 수술을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는 고개를 떨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김장 김치를 담은 통을 엘리베이터에 싣던 중, 허리에 찌릿하는 통증이 지나갔다. 참을만 했다. 다음날, 운동을 하면 좋아 질거란 생각으로 산행을 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그날 저녁 다시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어으으으.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엄청난 통증이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까 싶었지만 그건 헛된 희망이었다. 동네 병원과 한의원에도 가봤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그쯤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큰병원을 찾아 엠알아이를 찍었다.

그는 입원도 수술도 할수 없는 처지였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대게 그렇다. 어떤 희망이라도 찾으려한다. 일종의 자기위안이다. 그도 그랬다. 척추수술에 대해 검색해 보니, 사람의 육체는 자연치유 기간이 있는데, 한달 정도 지나면 호전되는 경우도 많다고 나와 있었다. 그것이 그의 지푸라기였다. 입원이나 수술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대신 오늘 오후에 서울에 다녀와야 하는데 8시간만 버틸수 있게 진통제를 놔주십시요. 의사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 봤다. 그러다 큰일 납니다. 지금은 절대 안정을... 그가 의사의 말을 끊었다. 부탁드립니다.

척추에 두대, 엉덩이에 한대. 총 세대의 주사를 맞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장 강한 것이 10이라면 8정도의 통증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끝이 뽀족한 망치로 그의 오른쪽 엉덩이를 때리는 것 같았다. 서 있을수도 앉아 있을수도 없었다. 이상태로 서울까지 다녀올수 있을까. 그러나 약속을 지켜야 했다. SRT 개통 1주년 기념식 사회자. 담당 팀장인 봉석이는 서울 기획사에 그를 강력히 추천했다. 그것도 좋았지만 더 마음에 든것은 출연료였다. 보통보다 세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이것도 봉석이의 배려였다. 녀석의 마음씀에 그는 늘 신세를 지는 기분이 들었다. 1년 전, 개통식 행사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서울 수서역에 기념식 행사를 별탈 없이 마무리했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

않았다. 초죽음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그는 입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집에 누워 있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몸을 치료하는 것만 생각하자. 그렇게 다짐한 후 침대에서 일어나 입원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면도기, 수건, 속옷.. 또 뭐가 필요하지? 통증 때문에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아내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비쳤다. 결혼 뒤에도 쉬지 않고 일만 하던 아내였다. 그는 무심코 다녀올게, 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게 맞는 것일까.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허리가 아파서 좀 누워 있을게요.

택시에 눕자 통증이 좀 가시는 듯 했다. 회색의 택시천장을 보며 그는 자신의 인생이 불쌍했다. 더럽고, 비참하고, 추악해서 견딜수가 없엏다. 이보다 더 나쁠순 없을 것이다. 아무 말 않고 열심히 하면 될줄 알았는데. 모나지 않게 살면 잘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조건 사람을 믿으면 될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는 언제나 호구였다. 갑자기 그의 심장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의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쉰한 살의 나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러나 아버지는 삼일후 깨어났다. 그리고 오른쪽에 마비가 왔고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당신의 넉넉한 품속에서 힘든 인생을 푸념이라도 하고 싶었다.

지금의 통증이 어떤 메시지는 아닐까. 좀더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는, 좀더 따뜻해야 한다는, 좀더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신호가 아닐까. 그는 통증만큼이나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웃을수 있다면, 그건 초월한 삶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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