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

어머니

 

 

 

 

 

 

우리집은 남자만 4형제다.

그래서 작은 체구의 내 어머니는

아들 4형제를 키우면서 평생 고생만 했다.

아들만 키워 본 집들은 안다.

아들만 있으면 집안 분위기가 아주 건조하다는 것을.....

 

 

젊은날...

 

나의 아버지는 잦은 음주와 함께 술마신 날이면 폭언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며

우리 4형제를 다독이며 살았다.

 

"내가 사는 이유는 너희들 때문이고 너희들만 잘 되면 된다" 라는 말과 함께....

 

 

아버지는 생활능력이 없으셨고,

그런 남편을 만난 내 어머니는 자식들 학비를 벌기 위해 

어떤일이든 끊임없이 일을 해야만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수험료 납부기간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정사정해서

자식들의 수험료 낼 돈을 꿔 오셨다.

 

 

집에 밥을 챙겨줄 여자가 없어

행상을 다녀온 후에 몸을 쉴 겨를도 없이 가족들 저녁을 챙겨 주셨고,

늦은 시간에 집에 왔을 때는 밥과 찌게를 끓일 시간절약을 위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없는집 형편에 라면값을 아끼기 위해 라면2개에

나머진 국수사리를 넣어서 뚝딱 5~6인분을 만들기도했다.

 

 

아....어머니는 그 지친 몸을 얼마나 쉬고 싶으셨을까.....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대전 동구 성남동에 있는 무허가 달동네에서 30여년을 살았다.

 

 

 

내가 살았던 그 무허가 집은 대문이 없었으며

화장실 조차 변변치 않았다.

그 화장실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싫었던지

나는 아직도 그 집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 재래식 화장실은 청소를 아무리 깨끗하게 해도 앉기조차 두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밖에서 용변을 해결하고 집에 들어가려는 습관도 있었다.

정화조 차가 다녀간날은 하루종일 그 냄새가 떠나지 않아

온 집안을 헤메고 다녔다.

 

 

그런 환경에서도

어머니는 언제나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일어나

자고 있는 가족을 위해 연탄을 갈았고,

겨울철 따뜻한 물로 세수를 할 수 있도록

찜통에 물을 담아 연탄불위에 데워주셨으며,

눈오는 날 꽁꽁 언 수도가에서 손을 불어가며,

그 거친손으로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며

자식들이 입을 교복을 빨아 주셨다.

얼마나 추웠던지 새까만 교복을 빨래줄에 널면

몇 시간후엔 꽁꽁 얼어버릴 정도였는데도

어머니는 찬물로 빨래를 했었다.

 

한 겨울 어느 일요일 늦은 아침...

빨래방망이 소리에 눈을 뜨고 무심코 방문을 열었을때

어머니가 수돗가에서 고무장갑도 없이 빨래하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 얼른 방문을 닫고

문에 기대어 눈물을 훔쳤던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생활 능력이 강하셨다.

젊은날에는 무능력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150cm 밖에 안되는 체구에도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행상을 다녔고

40대 초반부터는 남자들도 힘들어하던

리어카를 끌며 고물장사도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런 어머니가 싫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어머니가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사춘기 시절에

거리에서 고물장사 리어카를 끌고가는 어머니를 봤을때,

창피함에 누가 볼세라 멀리 피해갔던 적도 있었다.

 

 

그 시절에 내어머니는

하루종일 수집한 고물들을 고물상에 판후에,

저녁무렵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혼자서 빈 리어카를 끌고

어두워진 달동네를 올라왔다.

 

그리고......

어머니는 모르지만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세월이 흐르고....

군대를 다녀오고 온 나는

그 무렵부터

어머니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23살에 때늦은 공부를 시작했

24살에 야간대학에 입학했다.

 

낮에는 공장에 다니고

저녁에는 야간대학에 다니면서 내꿈을 키웠다.

 

 

29살에 결혼을 하고 33살에 큰 아이를 낳은후에는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않기위해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14년을 피웠던 담배를 끊었고,

그 몇 년후에는

 

"니 아버지가 술 때문에

중풍으로 20년이나 고생했으니까

너는 술을 끊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그토록.....

그리고 열심히....마시던 술도 끊었다.

 

 

혼자가 편하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로 지내시는 어머니...

 

 

아~

나의 어머니는

젊은날의 행상으로 인해 지금은 목과 등이 휘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굽은 등을 펼수가 없다.

그래서 자세가 항상 구부정하다.

 

그런 어머니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은 먹먹해진다.

 

그리고....

자꾸 눈물이 난다.

 

어. 머. 니.

 

 

 

 

 

 

 

 

 

 

 

 

 

 

 

 

 

 

 

 

 

'가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대하는 아들에게  (0) 2018.01.18
그게 부모의 역할이니까  (0) 2016.10.24
내 딸 유경이  (0) 2012.12.12
내 삶의 의미  (0) 2012.10.16
아들의 졸업식  (0) 2011.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