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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들을 통해 배운 것

 

이 선배와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 중이었다.

계절의 여왕답게 하늘은 너무 푸르렀고 공기는 청량했다.

"김 선생은 아직도 그런 거 바라세요?"

차안에서 이 선배는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순간 나는 몰래 밥을 먹다 들킨 사람처럼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나 보다 두 살이나 많은 그는 에둘러 말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어버이 날인 오늘 아침,

내가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는 말에 그가 웃으며 던진 농담이었지만 그말은 들은 나는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뭘 바랐던가? 

하긴 이렇게 서운한 걸 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저 처럼 마음을 비우세요. 그럼 괜찮을 거에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왜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을까.

작년이었다. 어버이날에 친구를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녀석이 그랬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침대 옆에 예쁜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고.

그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카네이션 정도는 있을 줄 알았어요."

내 말이 끝나자 이 선배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김 선생도 참 순수하시네요."

이 선배의 말을 들은 나는 보일듯 말듯 피식 웃었다.

그건 '아이들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어버이날의 식당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고 번호표까지 받아야 할 정도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부모님을 모시고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부모를 모시고 식사를 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되었으니까.

주문한 설렁탕을 먹으며 나는 내가 부모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잠깐 생각했다.

내가 부모님께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자식들이 내게 잘할 수 있을까.

그래도 선물을 못 받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내 가슴에 달아 줄 때의 감동은.

 

저녁 모임이 있었고 퇴근시간에 맞춰 아내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안방 화장대 위에 놓인 뭔가가 보였다.

투명 비닐에 싸인 카네이션 한송이와 편지 한 통.

그것을 본 순간 내 입에선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편지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 20만 원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얼마 전에 김치냉장고가 고장 났다고 하는 게 신경 쓰여서 조금 넣었습니다. 당장은 안 필요해도 김장 시즌에는 필요하니 보태 쓰세요. 군대에서 모은 돈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김치냉장고....

군대에서 모은 돈....

그리고 20만 원....

 

아들의 글을 읽고 나자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함께 들어온 아내도 마찬가지였던가 보다.

아내의 얼굴은 절대 그 감격을 깨서는 안 될 것 같은 엄숙함이 묻어 있었다.

 

부모는 자식을 통해 배운다고 하던가.

인간은 겉으로 보이는 몇 가지에 좌우되지 않는 법인데 나는 왜 아들을 섣불리 판단했던 것일까.

나는 돌아가신 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어머니의 수저'를 떠올렸다.

장롱 깊숙한 곳에 있던 그것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어떤 감정에 휘둘렸고 내 어깨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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