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품 분석

홈 스위트 홈 / 최진영 / 작품분석 / 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

방송인 김경훈 2023. 7. 2. 10:30

■홈 스위트 홈 / 최진영 / 작품분석 / 2023 이상문학상 작품집
 
1. 전체적인 소감
 좋은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작품을 다 읽은 뒤 “좋았다” 또는 “별로였다”가 아닌 좋은 소설 말이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에 대해 단순히 “좋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않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는 것처럼 모두 다르게 느껴질 테니까. 그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그건 작품속 등장인물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홈 스위트 홈’을 읽으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행복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 이 작품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도 좋지 않을까. 이뿐만이 아니었다. 몇 번을 읽어도 좋은 문장이 등장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P35 “내게 남은 기억. 나와 함께 사라질 기억. 나는 육체고 이름이며 누군가의 무엇이다. 그러나 그보다 깊은 영역에서, 나를 존재는 나만이 알고 있는 기억의 합에 더욱 가까웠다. 사람들이 말하는 영혼이란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떠났고 집은 버려졌어도 거기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나 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쓰는 문장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으라면 ‘집’이다. 여기서 집은 그냥 평범하고 단순한 집이 아니라 소설의 제목처럼 ‘달콤한 집’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기억’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억은 과거지만 여기에서는 미래에 대한 것을 강조한다. 미래를 기억하다니? 이게 가능해? 따지지는 말자. 작가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으니까. 화자는 처음부터 ‘미래에 대한 기억’을 꺼내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P14를 보자.
 “이제 나는 시간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므로 말이 안 되는 일도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미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실제 화자는 작품 속에서 미래의 일을 추억처럼 얘기하는데 이건 곧 화자의 희망을 상징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우리에게 묻는다. 행복이 당신 가까이 있는데 그걸 실천하며 살고 있나요?
 
2. 서사
 (1) 우물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자 엄마는 네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며 놀랐다. 말도 안 된다고 엄마는 말했다. 이제 나는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미래를 보고 기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기억 속에는 이런 집도 있다. 양철 대문의 오른쪽에 수도꼭지가 있고 쪼그려 앉아서 세수하는 개수대가 있는 집이다. 엄마는 내 얘길 듣고 깜짝 놀란다. 엄마가 신혼일 때 그런 집에서 산 적이 있다고 네가 그 집을 기억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2) 엄마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엄마가 빌려온 소형트럭을 타고 폐가로 향했다.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인 엄마를 보며 미래를 떠올렸다. 폐가에 도착한 우리는 사람 키만큼 자란 잡초를 베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를 영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3) 삼십 대 중반에 어진을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생활 삼 년째에 우리는 위태로웠다.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어진은 지쳐 있었고 우린 변화를 위해 충남 보령의 작은 빌라로 이사했다. 계절별로 색이 변하는 뒷동산과 멀리 해수면이 보이는 집이었다. 피로, 소음, 수면 부족이 그곳에서 어긋나듯 비껴갔고 함께 만든 음식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먹었다. 그 집에서 사십 대가 된 어느 날 엄마가 찾아왔다. 결혼식이 번거롭다면 혼인신고라도 하는 것이 어떻겠니? 대답은 했으나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암진단을 받았다.
 (4) 항암 치료를 받으며 건강에 대해 생각했다. 건강과 죽음은 큰 연관이 없다. 건강해도 죽을 수 있고 건강하지 않아도 오래 살 수 있다. 내가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즐겨 마시던 와인이 문제였나? 일을 줄였어야 했나? 병원 로비를 지날 때 누군가의 말이 내 귀를 후려쳤다. 아직 젊은 사람이 어떻게 살았으면 그런 병에 걸리냐? 나는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픈 사람 천지인 이곳에서 제발 말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싶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뿐이리.” 그러나 그런 집은 아직 없었다.
 (5) 나는 죽어가며 생각했다. 미래를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선택하고 싶었다. 나의 미래를. 나의 하루하루를. 나는 살아 본 적은 없으나 기억하는 집에 평면도를 그리고 어진에게 보여주며 “비 오는 날 여기에 앉아 부추전을 먹었다”고 말했다. 언제? 라는 어진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미래의 어느 여름날이라고. 이 집은 어디 있냐고 어진이 물었고 나는 이제 우리가 찾아낼 거라고 말했다.
 (6) 마당에 물을 뿌려 폐가의 풀을 베어낸 뒤 나는 엄마에게 폐가에 대한 계획을 설명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침실로 만들 거야. 집을 살펴보던 우리는 문틀에서 먼저 살았던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뾰족한 도구로 새겨 놓은 키재기의 흔적이었다. 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중학생 때의 꼬마 돈가스를 생각했다. 친구의 반찬통에 들어 있던 꼬마 돈가스는 당시 엄마가 만들어주던 것과 색다른 맛이었다. 그래서 점심시간마다 친구가 반찬통을 열기 전에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와라. 돈가스. 나는 엄마에게 영혼만 남기고 갈 생각이 없으니 죽은 나를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7) 병원 침대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죽고 싶었다. 엄마는 내게 왜 죽을 생각부터 하냐고 화를 냈다. 우린 차 안에서 자주 다퉜다. 엄마, 잘 기억해 나는 꼭 작별인사를 할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한숨을 쉬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비명을 지르면 그건 사랑한다는 뜻이야. 나는 사랑을 여기 두고 떠날 거라고 말했다.
 (8) 야산을 등진 작은 마을의 끄트머리에 방치된 폐가를 공사하며 나는 키재기 흔적이 남아있는 문틀과 야광별 스티커가 붙은 유리창을 절대 버리지 말라고 업체에 부탁했다. 공사를 도우며 집안 곳곳에서 여러 물건을 주웠다. 플라스틱 헤어핀, 고무공, 닳은 지우개… 나는 그것들을 깨끗이 씻어 바구니에 모아 두었다.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온 사람을 상상하면 행복했다.
 (9) 공사는 무사히 끝났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죽음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제 다른 것을 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하나.
 
3. 주제
 이 작품은 다 읽고 나니 머릿속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가?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주제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각자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 대충 주제가 드러나고 두 번 읽으면 감이 잡힌다. 자, 그럼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을 작품에서 찾아보자. P38 마지막 부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이제 다른 것을 보며 살 것이다.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 한 송이. 해변의 모래알 하나.” 이건 말 그대로 이제 다른 삶을 살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겠다는 다짐이다.
 p27에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나는 선택하고 싶었다. 나의 미래를. 나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살아 있다는 감각에 충실하고 싶었다.”
이쯤 되면 이 작품의 주제는 꾹꾹 눌러쓴 볼펜 글씨처럼 선명해졌다.
 
4. 클라이맥스
 정확하게 여기가 클라이맥스, 라고 얘기할 부분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의 압권은 행복에 대한 묘사였다. 참고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했다. P37를 보자.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물이 참 달다고 말하는 당신. 실없이 웃는 당신. 나의 천국은 이곳에 있고 그 또한 내가 두고 갈 것.”
 주제넘게도 나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내 방식으로 고쳐봤다.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논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 겨울날 모닥불 앞의 따뜻함. 당신의 잠자는 얼굴. 여름날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 안개가 피어오르는 연못. 소나무 숲의 향기. 산정상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 붉게 물든 노을. 사랑을 고백하는 당신의 입술. 여기는 나의 천국. 하지만 내가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곳.”
 
4. 주제를 강화하는 소도구
 ■집: 가족이자 행복
 ■기억: 과거의 기억이 아닌 미래의 기억, 희망을 상징
 ■나와라. 돈가스: 좋은 기억만을 떠올리는 주문
 ■키재기 흔적이 남은 문틀과 공사하며 나온 폐가의 물건들: 행복하고 따스한 기억을 의미
 
5. 아쉬운 점
 끝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작품에 대한 게 아니라 출판사의 편집에 대한 서운함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 ‘들여쓰기’를 배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글을 이렇게 썼다. 이건 정해진 약속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들여쓰기를 하지 않았다.  이번 작품 ‘홈 스위트 홈’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책의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의 맨 처음 시작과 작품속 각 장의 첫째 줄 들여쓰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들여쓰기는 한글자의 들여쓰기가  아닌 두글자 들여쓰기다. 글쎄다. 어떤 꼬마가 나에게 이건 왜 들여쓰기를 안 했나요?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기본’은 ‘질서’다. 우리는 간혹 그런 것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