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품 분석

엉킨 소매 / 이서수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방송인 김경훈 2023. 2. 9. 20:19

■엉킨 소매 / 이서수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소감
 좋는 소설이란 어떤 것일까? 매번 작품을 읽으며 그걸 생각한다. 좋은 소설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작품을 읽으며 내 인생을 돌아본다면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엉킨 소매를 읽으며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내뱉는 의미없는 말이 상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이점이 장점이다. 글을 읽는 사람은 화자의 감정에 동화되며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선택권에 대해 고민한다. 솔직히 나는 작품을 읽으며 여성의 내면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깊이 생각해 볼것이 있다. 임신한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역할이다. 이 작품 속에선 혀를 내두를 정도다. 남자 캐릭터는 전혀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철부지이며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다. 게다가 콘돔을 뺄 때 너도 합의했다며 녹음 파일을 들려준다. 이 부분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소설과는 좀 다른 얘기지만 나는 J 대학에서 ‘글로벌 시대의 젠더와 커뮤니케이션’이란 교양과목을 담당했다. 결코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다. 처음 이 과목에 대한 의뢰를 받았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다. 전공도 아니었고 모르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수락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바빠졌다. 수강생들에게 망신을 당하지 않아야 하니까. 교재를 읽고 밑줄을 치고 강의를 준비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젠더’는 생물학적인 성(性)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性)을 말하며 남성중에는 여성성이 강한 남성도 있고, 여성 중에는 남성성이 강한 여성도 있다는 것을. 생물학적 성은 유전자, 호르몬 등으로 연관된 성의 범주지만 사회적 성은 문화적, 심리적, 사고방식 등을 인정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젠더’ 과목은 이제 전국의 많은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채택되었다. ‘젠더’ 수업의 핵심은 ‘양성평등’이며 여성학이지만 남성이 수업을 들어야 한다. 성 평등에 관한 한 여성을 괴롭히는 주체가 남성이니까. 내가 이렇게 장황한 말을 늘어놓은 이유는 이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엉킨 소매’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화자의 남자친구였던 ‘경현’ 같은 놈은 되지 말아야 하니까.
 
2. 서사
(1)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나는 남자친구 경현과 함께 산부인과로 간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 밖으로 나온다. 경현은 콘돔을 뺀 것에 너도 합의했다고 녹음된 파일을 들려주고 준다. 친구 해정은 임신을 임대업에 비유하며 방의 주인은 너이기에 너의 결정에 달린 문제라고 말한다. 같이 있던 언니 주영씨는 임신을 포경수술에 비유하는데 남자의 성장통이 포경수술이라면 여자의 임신 중지도 일종의 성장통이라 주장한다.
(2) 6주의 태아를 임신한 나는 생명을 죽인다는 죄책감과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지만 원하는 삶을 위해 임신중절을 마음먹는다. 새벽 4시에 주영씨는 인도의 어느 가족에 대한 장문의 톡을 보내 온다. 아기가 태어날 때 여자아이는 막대한 결혼지참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빠는 아이에게 독을 먹여 죽인다. 엄마는 아기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모든 일은 엄마와 아기의 잘못이란 문자다. 여아 살인과 임신 중지는 다른데 주영씨가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기분이 나쁘다.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먼저 상처를 주는 것은 너무하단 생각이 든다. 수술하러 갈 때 주영씨가 아닌 해정이 같이 가는 게 좋겠다고 마음먹는다.
(3) 중신 중절을 마친 나는 쉴 곳을 찾아가기 위해 해정을 만난다. 어제 오후,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해정은 울며 네가 너무 작고 연약해 보여서 걱정이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 집은 공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지낼 수가 없어 화가 난다. 해정이 소개해 준 집으로 갔을 때 복도 벽이 괴상했다. 가운데 부분이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크게 튀어나와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방에 굳이 문을 달아 방 구실을 해놓은 게 우스웠고 싱크대와 거실벽이 삐뚤게 설치되어 있었다. 집주인이 해정의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는데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 내가 잠시 쓰기로 한 것이다. 한숨자고 일어나자 해정과 주영씨가 3단으로 접힌 매트리스를 들고 온다. 주영씨는 어제 시장에서 봤던 풍경을 들려준다. 트럭 짐칸에 실린 네 마리의 돼지는 머리와 내장이 없었는데 그걸 본 순간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쇼케이스에 튀겨놓은 돈가스를 샀다는 얘기였다. 주영씨는 분열을 느낄 때마다 둘로 쪼개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주영씨가 싫다. 주영씨에게 말한다. 주영씨, 원치 않는 임신도 폭력이야. 그러니까 나를 그만 좀 판단해. 주영씨는 같이 사는 사촌에 대한 말도 한다. 걔도 작년에 수술했다고. 엄마에게 말한 뒤 수술을 했으나 그 뒤 사이가 서먹해졌다고.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었겠다는 말이었다.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주인아주머니가 들어온다. 우리 세 사람은 주인아주머니에게 쫓겨난 뒤 놀이터에서 모랫바닥에 매트리스를 펼치고 눕는다. 해정이 매트리스를 잡고 질질 끌기 시작하고 그 바람에 우리는 깔깔 웃는다. 나는 그런 해정과 주영씨가 좋다고 생각한다.
 
3. 주제를 향한 문장
작품을 읽으며 시종일관 ‘여성의 몸’과 ‘원치 않은 임신’에 대한 ‘선택권’을 떠올렸다. 남자인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었다. 좋은 임신과 나쁜 임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작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출산과 임신중절 사이에서의 선택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윤리적인 판단 사이에서의 선택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낙태에 관한 나와 또 다른 내가 갈등할 때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작품 속에서 집과 여자의 몸을 비교한 부분에선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P155다.
“집은 재산이란 이유로 침입을 허락하지 않은데, 여자 몸은 집만도 못하다는 건가?”
작품을 다 읽은 뒤에 내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 있었다. ‘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에게 네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을 하지 않았나?’ 작품을 읽으며 깨달았다. 이런 말들은 당사자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겠구나.
자, 그럼 주제를 찾아보자.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은 네 사람이다. 화자인 나와 나의 남자였던 경현, 친구 해정과 언니 주영 씨다. 경현은 언급할 가치도 없으니 넘어가자. 해정은 나의 모든 것을 받아주는 친구니까 역시 넘어간다. 중요한 인물은 주영씨다. 화자인 나는 줄곧 주영 씨의 말에 갈등을 겪는다. 2장에서 인도의 어느 가정집에 대한 문자를 받았을 때 주영 씨가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느꼈고, 여아 살인과 임신 중지는 전혀 다른 일인데 그걸 왜 묶어서 생각하냐고 주영씨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아무런 답장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영씨는 시장에서 죽은 돼지를 보며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얘기와 폭력 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데 폭력과 폭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주영 씨가 싫어진다. 게다가 주영씨는 내가 임신 중지 수술을 받을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눈치다. 참고로 이 작품에서 갈등 부분이 압권이다. 세 사람은 이상한 집의 주인아주머니에 의해 쫓겨나고 놀이터 모랫바닥에 3단 매트리스를 깔고 눕는다. 해정은 갑자기 매트리스 끄트머리를 붙잡고 질질 끌고 다닌다. 중심을 잃고 떨어지려고 할 때 주영 씨가 나를 붙잡아 주자 화자는 생각한다. P156이다.
“먼지구름이 가라앉으면 보이는 우리의 얼굴은 저마다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겠지. 그러나 서로에게 뭔가를 해주려고 늘 기다리는 사람들이겠지. 자기 생각을 말하다가 상대를 다치게 하고, 자기도 다치는 사람들이겠지. 차라리, 입을 다물까. 집이든 몸이든 뭐든 그냥 다른 사람들이나 떠들라 하고 우리는 이렇게 아이처럼 장난이나 치며 살까, 하지만 자꾸 울고 싶은 일이 생기는 걸 어쩌나. 어떻게 막을 수가 있나.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사건이 우리 가슴에 유성처럼 떨어질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 소매가 엉킨 채로 함께 걸어갈 것이다.”
이 문장은 갈등의 해소를 뜻하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면 어떤 고난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4. 클라이맥스
특별한 클라이맥스는 없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P156 의 갈등의 해소 부분이다.
“해정이 갑자기 매트리스 끄트머리를 붙잡더니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웃으며 그만하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옆으로 굴러떨어질 뻔해서 주영 씨가 붙잡아 주었다. 해정은 이대로 집까지 가자고 말했다.”
 
5. 소도구
■매트리스: 우리는 함께한다는 뜻이며 고난의 극복을 상징한다.
■복도 벽이 튀어나온 이상한 집: 임신한 여성과 집을 동일시 하는 소도구이다.
■소설 제목: '엉킨 소매'의 의미는 소매를 묶고 함께 가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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