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 안보윤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소설집
■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 안보윤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총평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후, 하고 한숨이 나왔다. 사랑과 용서의 방식이 다들 제각각이고 어쩜 그렇게 자기만 생각하는지 작품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에는 분노가, 또 어느 순간에는 탄식이, 또 어느 순간에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안보윤 작가의 장점은 독자를 자신의 작품 속에 몰입하게 만드는 점이다. 이 작품 역시 흡입력이 대단하다. 첫번째 정독후에 심호흡을 하고 다시 책을 펴서 두번째 읽어봤다. 그런데 첫번째와는 달리 장점보다는 단점이 눈에 보였다. 아, 이건 좀 아닌데. 주제가 너무 허망하잖아. 일단 주제에 대해선 조금 있다가 얘기하기로 하고 몇 가지의 아쉬움을 적는다. 소설의 완성도에 있어서 이건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첫 번째, 옆집 여자의 말에 의하면 행정 조교가 그렇게 많이 하진의 집에 무단 침입을 했다는데 하진은 그걸 몰랐단 말인가? 사람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법이고 누군가 몰래 다녀가면 집주인은 그걸 안다. 둘째, 행정 조교가 다시 들어 올까 봐 하진은 불안감을 느끼는데 현관 자물쇠를 바꾸거나 비밀번호를 재설정하면 되지 않는가? 이건 초등학생도 안다. 그런데 왜 그런 부분은 없을까. 세 번째, 서로 헐뜯고 싸우고 비난했던 헤어진 하진의 엄마 아빠가 갑자기 사이가 좋아지며 잉꼬부부가 됐다. 작품 속에서는 왜 그런지 뚜렷한 이유도 나오지 않는다. 부부싸움은 그렇다 치자.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네 번째는 우연이다. 중학교 때 상담실에서 만났던 유영이란 친구를 시간이 지난 뒤 바로 옆집에 산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소설이다. 소설은 TV 드라마와 달리 우연히 만나고, 우연히 엿듣고, 우연히 출생의 비밀을 알면 안된다. 소설은 매우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소설이다.
2. 서사
(1) 하진의 집에 행정 조교가 무단으로 침입하고 경찰이 그를 체포하지만 그는 짝사랑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행정 조교는 피해자인 하진이 아니라 경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용서를 구한다. 옆집 여자의 진술에 의하면 그의 침입은 한번이 아니었다. 행정조교는 하진의 집에서 TV를 봤고 고함을 쳤으며 꺼이꺼이 울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진은 무단 침입의 증거를 잡기 위해 CCTV 어플이 깔린 스마트 폰을 설치했으나 막상 남자가 자신에 집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공포에 휩싸인다. 집에서 뛰쳐나온 하진을 보며 옆집 여자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하진은 옆집 여자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듯하다고 생각하고 그녀가 학교친구 유영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2) 중학교 시절의 하진은 심리검사에서 ‘자살 위험’으로 분류되고 상담실에서 3반의 유영을 만난다. 유영 역시 하진과 같은 ‘자살 위험’이었다. 하영의 부모는 좋은 부부가 아니었다. 서로의 자존심을 뭉개고 비난했고 급기야 두 사람은 헤어진다. 어느 날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있던 하진의 목을 조른다. 하진은 죽음의 직전에서 이모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엄마는 하진에게 용서를 구하며 사랑 때문이었다고 변명을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하진은 엄마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진은 방문을 잠그고 매일 밤 잠을 잔다. 재검사를 받던 보건실에서 하진과 유영은 검사지를 새로 작성한다. 그때 유영은 하영에게 영화에 나온 ‘오다기리 조’에 대해 얘기한다. 영화에서 오다기리 조는 엉덩이에 꽉 낀 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스텝 누구도 그걸 얘기해 주지 않았다며 누군가 손을 뻗어 바지를 내려 주었다면 좋았을 거라 말한다. 하진은 유영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재검사 상담지에 자살과는 관련 없는 말을 쓴다.
(3) 예전 사고의 후유증으로 유영은 하진을 기억하지 못하고 하진은 유영을 모른채 하기로 마음먹는다. CCTV와 함께 경보기를 달자며 유영은 경보음이 울리면 자신이 뛰어가겠다고 하진에게 말한다. 하진은 깨닫는다. 유영이 하진에게 가족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을. 하진은 자신의 집에 무단 침입한 조교의 징계를 위해 이곳저곳에 알린다. 그러자 조교는 하진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따진다.
(4) 조교는 하진의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어 용서를 구했고 엄마는 하진에게 그를 용서해 주라고 말한다. 정작 자신에게는 사과하지 않는 행동에 화가 난 하진은 엄마에게 그 사람이 엄마처럼 자신을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하냐며 따진다. 엄마는 하진에게 예전의 그 일(엄마가 하진을 죽이려 했던)은 이미 용서를 구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 엄마에게 하진은 말한다. 자신은 엄마가 두려웠고 끔찍했다고. 그때 윗집에서 뭔가 부서지는 굉음에 잠을 깬 하진은 유영이 윗집으로 가려는 것을 본다. 112에 신고한 뒤 윗집으로 가려는 유영을 하진이 붙잡으며 “가지 말라”고 말하자 유영이 대답한다. 그때 나는 매일매일 기다렸다고.
3. 주제를 향한 문장
독자는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에 주목한다.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 사건이 ‘엄마의 폭력’이다. 하진의 엄마는 어린 하진을 죽이려 했고 아동 폭력의 피해를 당한 주인공 하진은 성장한 뒤에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엄마는 잘못에 대한 용서보다는 사랑 때문에 그랬다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게 과연 사랑인가. 작가는 말한다. 이건 폭력이라고. 어린 시절 폭력에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 친구 유영은 학교 보건실에서 하진에게 주제와 관련된 중요한 말을 한다.
“오다기리 조가 엄청 타이트한 바지만 입고 나오는 거야. 엉덩이가 저렇게까지 바지를 씹어먹었는데 아무도 얘길 안 해줬나? 누가 손을 뻗어서 바지를 내려 주면 저 엉덩이가 숨을 쉴 수 있을 텐데.”
이 부분이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다. 왜 그럴까? 주인공 하진은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그걸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인물이다. 중학교 때 상담실에서 만난 유영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고 자신 혼자 상담실을 나온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와 관련이 깊다. 이렇듯 하진은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이다. 그러나 하진의 친구 유영은 따뜻한 사람이다. 그건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공포에 질린 하진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코알라가 그려진 원피스를 내주고, 경보음이 울리면 자신이 먼저 뛰어가겠다고 말한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위층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112에 신고한 뒤 윗집으로 올라간다.
P60 “나는 저 소리가 뭔지 알아. 저게 뭘 의미하는 건지, 나는 알아.”
폭력에 노출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 작가는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그런데 허망하다. 그건 주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주제는 나무의 뿌리처럼 보일듯 말듯 처음에 읽을 땐 A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 보니 B인 것 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 단편소설의 주제다.
4. 클라이맥스
P60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112를 누른 유영이 다급히 주소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가보려고?”
“가봐야지.”
5. 소도구
■코알라 원피스(유영이 자신의 집에서 하영에게 건네준 옷): 위험에 빠진 누군가에게 건네는 도움의 손길이다.
■오다기리 조(유영이 상담실에서 하영에게 했던 영화 이야기이고 마지막 문장에도 이 말이 나온다): 아무도 내려 주지 않는 바지였는데 이것 역시 폭력을 의미한다.
■소설제목: 바늘 끝에서 몇명의 천사가 : 이 말은 중세의 대표적인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표적인 책 '신학대전'에 나온 말이다. 아퀴나스는 '여러명의 천사가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는가?' 라고 했는데 이걸 윌리엄 실링우드가 '바늘 끝 위에서 몇 명의 천사가 춤을 출 수 있을까?' 로 왜곡해서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