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품 분석

어떤 진심 / 안보윤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소설집

방송인 김경훈 2023. 1. 12. 15:17

■어떤 진심 / 안보윤 / 작품분석 / 202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중에서
 
1. 전체적인 느낌
 작품을 읽으면서 커튼이 가려진 캄캄한 방안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런 불빛이 없는 곳에서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가려진 커튼 사이로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유란이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사이비 종교 집단에 아이들을 포섭해서 데려오는 여자. 그런데 문장을 읽어내려 갈수록 모래를 씹은 것처럼 입안이 꺼끄러워졌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오유란의 감정에 동화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글속의 주인물에게 공감을 느끼는 것은 작가에게 최고의 칭찬이다.
 어릴 적 교회에 엄마와 짐을 싸들고 갔을 때의 유란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열매들을 교회로 데려왔다. 하지만 유란은 점점 흔들린다. 작품의 뒤로 갈수록 그런 유란의 심정이 독자에게 전해진다. 뒤로 갈수록 궁금해졌다. 오유란은 과연 이서를 포섭할 수 있을까?
 작품 속 주인공에 대한 감정의 동화는 나뿐만이 아니라 이 작품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공통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게 안보윤 작가의 장점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을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뽑아주었을 것이다. 사실 안보윤의 작품은 처음이 아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안보윤이 더 좋아졌다. 2022 현대문학상 소설집에 나온 ‘밤은 내가 가질 게’ 를 읽을 때도 감탄사를 여러번 터뜨렸는데 이번에도 그때처럼 작품이 좋았다. 이 소설의 압권은 심미적 거리다. 카메라 앵글처럼 와이드샷이었다가 다시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다 읽은 뒤 이렇게 생각했다. 누구도 오유란의 행동에 돌을 던질 권리는 없다.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는 자신의 방식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것이 진심이라고 믿고 있다.
 
2. 서사
(1) 오유란은 두 달 전, 카페에서 이서를 만났다. 채팅 어플로 유란은 여학생 두 명을 섭외했고 과외를 무료로 시켜주겠다고 말한다. 두 명 중 한 명이 이서였다. 함께 있던 여학생과 달리 이서는 유란의 문제 풀이를 끝까지 들어준다. 이를 계기로 이서의 과외가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난 뒤 유란은 이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유란은 이서에게 말한다. 내가 너의 언니가 되어줄게. 유란은 이서에게 이 말을 하기 위해 그간의 시간을 견뎠다.
 
(2) 10년 전 유란은 ‘믿음 샘 교회’로 이사 왔다. 하천을 복개 한 동네에 있는 3층 건물의 믿음교회는 청소년수련원과 기도원도 함께 운영한다. 과외를 받던 이서는 유란에게 꿈 얘기를 들려준다. 문이 나오는 꿈이다. 문 앞에 선 사람에게 이서는 문을 열면 안 된다고 소리치는 꿈이다. 아홉 살의 유란은 엄마를 따라 믿음교회 3층으로 왔다. 뜨게 공방과 아파트를 팔아 교회에 몽땅 기부한 유란의 엄마는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목사님은 우리를 이끌어 주실 분이야. 신도들은 유란의 엄마를 사모님이라 불렀고 유란을 열매라고 호칭한다. 유란은 믿음교회의 첫 번째 열매가 되었다. 유란은 학교에서 황 목사를 진정한 구원자라고 얘기를 하지만 아이들은 유란을 수상쩍은 아이로 본다.
 
(3) 믿음교회에 전도된 열매들이 일찌감치 합숙 생활을 하는 것과 달리 24살의 유란은 성인이 된 뒤에 수련원으로 들어갔고 남들처럼 8인실이 아닌 1인실을 사용한다. 그곳에서 유란은 ‘진심’에 대해 생각한다. 믿음교회에서 유란이 하는 일은 씨앗을 선택하고 전도하는 일이다. 교회에서 유일한 친구인 민주도 유란이 데려온 열매였다. 민주는 믿음교회에서 성가대의 피아노 연주와 열매들을 열성적으로 가르치며 황 목사의 총애를 받는다. 이서는 유란에게 친구에 대해 고백한다. 자신의 무관심으로 인해 친구가 죽었다고. 그러면서 유란에게 묻는다. 언니도 가끔 언니를 ……할 때가 있나요.
 
(4) 학교에서 유일하게 유란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민주였다. 민주는 유란을 이해했고 두 사람은 항상 붙어 다녔다. 민주는 유란이 데려온 열매였으며 믿음교회에서 피아노를 쳤다. 성가대 반주를 하는 민주를 보며 황 목사는 기뻐했지만 유란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빼앗겼는지 알게 된다. 황 목사는 자신의 힘이 약하고 더 큰 성전을 갖지 못해 더러워진 영혼들을 구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신도들에게 사과한다. 반복되는 사과에 신도들은 더 많은 재산을 교회에 기부한다. 유란은 민주를 돌려받기 위해서 씨앗을 모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는 교회 일에 진심이 되어있었다. 유란의 엄마는 부동산 명의가 왜 황 목사 가족에게만 되어있는지 따지며 황 목사와 크게 싸운다. 다음 날 황 목사 아들은 유란에게 제일 비싼 나라로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얘기하지만 유란은 그걸 뿌리친다. 황 목사 아들은 화를 내며 말한다. 너 교회에 욕심있어? 지금 나랑 해보겠다는 거야? 이서는 교회에 오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고 유란에게 전화로 말한다. 거의 다 왔어요. 언니. 높고 뾰족한 첨탑과 아주 근사한 건물이 보인다고 말한다.
 
3. 주제를 향한 문장
주제를 알아보기 위해선 등장인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다섯 사람이다. 오유란, 이서, 친구 민주, 황 목사, 유란 엄마. 이 다섯 사람의 현재의 마음을 살펴보자. 아마도 작가는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의 캐릭터를 소설 제목인 ‘진심’으로 예를 들어보자. 그럼 이해가 빠르지 않겠는가. 먼저 주인공인 오유란이다. 그녀는 현재는 진심이 아니고 자신의 진심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후회하는 중이다. 여기서의 ‘진심’은 오유란이 믿음교회로 열매를 데려오는 일이었다. 그랬던 오유란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건 작품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P21 “유란도 진심이던 시절이 있었다.”
P23 “그때의 진심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결정적인 문장은 P23 아래쪽에 나온다.
“어떤 진심은 진심이라서 한심했다. 어떤 진심은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속 복숭아처럼 쇠 냄새를 풍기며 삭았다. 어떤 진심은 추해졌고 어떤 진심은 다만 견뎌내는 삶으로 전락했다.” 이런 문장들이 오유란의 현재의 심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 이번엔 중요한 인물인 ‘이서’를 살펴보자. 이서는 유란에게 진심이었을까? 당연히 진심이었다. 하지만 이서는 좀 다르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이서를 개장수가 낚시 바늘에 쥐포를 달아서 동네 개를 유인하듯이 독자를 유인하는 일종의 떡밥처럼 사용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인물이 바로 이서다. 그래서 독자는 시종일관 이서에게 마음을 졸인다. “이서야, 오유란은 너를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데려가는 거란다. 속으면 안 돼.” 이게 이서의 역할이다.
이번엔 유란의 친구 민주에게 주목해 보자. 신도들의 자녀를 맡아 가르치는 민주는 황 목사의 인정을 받으며 어느 틈에 교회에 진심이 되어있었다. 민주 언니가 민주를 찾으러 교회에 왔을 때도 방에 숨을 정도였다. 그런 민주를 보며 유란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은 유란의 엄마다. 우리의 영혼을 구해줄 사람이 황 목사라고 믿으며 모든 재산을 헌납했던 유란의 엄마는 황 목사의 음흉한 마음을 알게 된다. 왜 모든 재산이 황 목사의 가족 명의로 되어있는 거냐고 유란의 엄마는 그 점을 얘기하며 황 목사와 다툰다. 유란의 엄마는 처음과 달리 이젠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끝으로 황 목사를 살펴보자. 황 목사는 작품에서 많이 나오지는 않으나 캐릭터가 분명하다. 신도들에게 계속 사과하며 재산이 불어난다. 욕망이 가득 찬 황 목사는 처음부터 진심이 아니었다.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은 거의 뒷부분에 나온다. P34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이젠 누구도 진심이 아닌 곳에 왜 열매들만이, 오직 열매들만이 진심인 채로 남아 있을까.”
이 문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감정’이 아닐까. ‘처음에는 진심이었을망정 어느 순간 변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러할 테니까. 처음에는 이 작품의 주제가 사이비 종교와 관련된 유란의 행동, 즉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유란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두 번째 읽으니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4. 클라이맥스
작품을 읽고 나니 궁금증이 생겼다. 그건 이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이었다. 주인공 오유란은 과연 이서를 믿음교회의 열매로 만들까? 처음에는 그게 클라이맥스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작가는 그 부분을 쓰지 않고 열린 결말로 끝을 낸다. 그래서 클라이맥스는 없다. 다만 황 목사의 아들이 유란에게 유학을 권유하고 유란이 그걸 거절하는 부분이 이 작품의 최고조까지 올라간 부분이었다.
 
5. 소도구
특별히 발견되는 소도구도 없지만 ‘뾰족지붕’이나 ‘청소년 수련원’ 등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