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 김병운 / 작품분석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 김병운 / 2022 올해의 문제소설집중에서
1. 전체적인 총평
저녁 반찬이 마땅치 않아서 며칠 전에 된장찌개를 끓였다. 다 끓인 후 맛을 보니 입에 착, 붙는 맛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왜 맛이 안 날까? 그때 뭔가가 퍼뜩 내 머리를 스쳤다. 그렇지, 그게 빠졌구나. 나는 씽크대의 수납장을 열어 그것을 꺼냈고 한 숟가락을 담아서 된장찌개에 넣었다. 아, 그제야 된장찌개의 깊은 맛이 났다.
어떤 글은 밍밍한 된장찌개 같은 소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글은 깊은 맛이 나는 된장찌개 같은 작품도 있다. 지금 내가 얘기하는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가 바로 후자에 속한다. 참고로 앞서 된장찌개에 내가 넣은 것은 ‘쇠고기 다시다’이다. MSG를 된장찌개에 넣고 안 넣고의 차이는 순전히 본인의 취향이지만 나는 이걸 넣어야만 좋다.
내가 전문적인 문학가는 아니더라도 글을 읽다 보면 이 작가가 습작 기간이 얼마나 많은지 느낌이 온다. 물론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견해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작품 속에서 비문이나 혹은 어울리지 않는 인용을 예로 들면 감추려 해도 자신의 정체가 탄로가 나기 마련이다. 한데 이 작품은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세련된 원목 가구처럼 말끔하다. 게다가 가구의 테두리도 둥글둥글하게 사포질로 다듬어 놓았다. 어허, 장문이 자주 보이는데? 그런데도 문장이 이불 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품 속에서 슬며시 던지는 ‘복선’과 ‘암시’는 독자에게 흥미를 주고 계속 다음 문장을 읽게 만든다. 아, 정말이지 이런 기술은 나도 배우고 싶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장례식장에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화자에게 은미 누나는 자신을 보고 가라고 한다. 이걸 보며 독자는 생각한다. 뭔가가 있구나? 그게 뭘까? 적절한 복선과 암시는 우리를 끝까지 글을 읽도록 유도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장점은 화자의 깊은 내면이다. 앞서 된장찌개에서 말한 MSG를 문장에 뿌린 것 같다. 솔직한 화자의 심정이 작품 전체의 깊은 맛을 내고 있다. 아, 이 작가는 1인칭 소설의 장점을 잘 활용하고 있구나.
2. 각 장의 서사
1) 좀스러운 4촌 매형에 대한 설명이다. 그 집 첫째아들인 준기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었던 화자에게 과외비를 5만 원이나 깎은 은수 누나의 남편인 매형이 폐암으로 죽었다.
2) 매형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고속열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오는 화자는 장례식 참석이 못내 불편하다. 은미 누나는 화자에게 카톡으로 자신을 꼭 만나고 가야 한다고 당부하고 화자는 대구에 아는 남자(성 소수자임을 암시)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3) 장례식장에 도착한 화자는 은미 누나는 만나지 못했으나 은미 누나의 아들 첫째와 둘째가 싸웠다는 얘기를 친척들에게 듣는다. 접객실 테이블에 앉은 화자는 옆자리의 중년 여인들과 얘길 나누며 3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1992년 포천의 스키장 콘도에서 만난 정아 누나는 보통의 누나와는 달랐다. 우리는 그분에게 정말 여자가 맞느냐고 집요하게 물었으니까. 하지만 화자는 정아라는 사람이 아들만 둘이라는 소리를 듣고 실망한다. 한사람이라도 ‘퀴어’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화자의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4) 은미 누나와 만남을 가지며 화자는 누나의 아이들에 주목한다. 그런데 둘째란 아이가 좀 이상하다. 쌍꺼풀이나 치아교정 얘기에 성형을 강요했다며 화를 내고 예쁘다는 말에 그런 평가는 부적절하고 문제라며 트집을 잡는다. 동질감 때문인지 화자는 그런 둘째에게 관심이 간다.
5)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화자에게 은미 누나는 줄 게 있다면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10여 분 뒤에 나타난 사람은 은미 누나가 아니라 둘째였다. 쇼핑백을 건네준 둘째는 화자에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화자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다고 말하며 화자의 전화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아까 엄마가 역 앞에 가서 삼촌을 못 찾으면 연락하라면서 번호를 알려줬다고. 화자는 여기에서 깨닫는다. 누나는 왜 하필 둘째를 보냈을까. 둘째의 당당함에 화자는 같은 성 소수자라 할지라도 둘째는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3. 주제를 향한 문장
화자는 성 소수자도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둘째인 경진(퀴어)을 보며 느낀다. 당당하지 못하고 평생 소극적이었던 자신과 달리 열여섯의 경진은 거침이 없다. 게다가 경진은 자기의 생각을 상대에게 분명히 전달하고(그래서 형과 싸웠다) 소신대로 행동한다. 그걸 보며 화자는 경진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4. 클라이맥스
P68이 클라이맥스다.
“이름이 뭐랬지? 아까 듣긴 들었는데.”
“경진이요.”
“그래, 경진이구나. 이경진.”
다음에 나오는 말이 중요하다. 독자들의 허를 찔렀으니까.
“한경진이요.”
‘이 씨’가 아니고 ‘한 씨’란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여기에서 ‘한 씨’는 큰 의미가 있다. 나는 당신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니까.
5. 주제를 강조하는 소도구
■소설 제목: 두 시간 동안 화자는 젊은 성 소수자의 당당함을 목격했다.
■한 씨: 매우 중요한 소도구인데 당신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