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꼭,
자신이 생각해도 그는 무엇을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무기력한 중년남자의 하루는 시계추처럼 비슷했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여덟 시에 시립도서관 3층 열람실에 자리를 앉은 뒤, 정오에 도서관 지하식당에서 삼천오백 원짜리 백반을 먹었다. 식사를 끝낸 후 도서관 뒤편에 있는 보문산을 올라갔다. 한 시간의 산행코스였다. 그는 그곳에서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을 만나며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갔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산행을 끝내고 오후 한 시부터는 다시 한밭도서관 의자에 앉아 여섯 시까지 책을 읽었다. 비록 도서관의 딱딱한 의자였지만 그 시간만큼은 그는 행복했다. 몇년이 지나자 그의 내공도 깊어졌다. 더 이상 나는 분노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쓸데 없는 것에 마음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리라.
어느 덧 그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런 시간이 육 년 넘게 이어졌다. 그가 도서관에 앉아 쓴 책이 출판 되었고 그는 더 나은 무언가를 꿈꿨다. 특유의 쾌활하고 유쾌한 표정의 그가 돌아왔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드디어 찾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방향으로 나갔다. 2020년 2월에 코로나 때문에 시립도서관이 문을 닫은 것이다. 메르스 사태 때와는 전혀 다른 결정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 질때까지 시립도서관은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일년이 될지 이년이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도서관의 폐관과 함께 그의 생활도 달라졌다. 집을 나오면 갈 곳이 없었다. 대학교 도서관이나 카페,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열린 공간에서 그는 집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후 좌표 없이 떠도는 배처럼 그의 ‘유랑’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는 낙심했다. 일기장을 펴고 자신의 심정을 적었다.
‘아침에 집을 나와 친구 사무실에 들러 믹스커피를 마셨다. 녀석에게 빌붙어 점심까지 얻어 먹었지만 오후에는 갈 곳이 없다. 어제는 용담댐에 다녀왔지만 오히려 공허함만 안고 돌아왔을 뿐이다. 할 수 없이 한남대 앞에 있는 카페로 갔다. 마시지도 않는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책을 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다 나왔다.'
그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그것은 우연으로 시작되었으나 필연으로 완성되었다. 그에게 책을 읽을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의 친구가 자신의 사무실 한 켠을 내줬다.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도 없이 말이다.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것처럼 고마운 친구였다. 그는 기쁨의 웃음을 지었다.
넓은 책상에 넉넉한 책꽂이, 그리고 인터넷까지 갖춘 훌륭한 공간이었다. 친구로인해 그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되찾았다. 그 공간에서 그는 접어 놓았던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첫번째 장에 ‘신춘 문예 도전’이라고 썼으며 그 옆에 ‘이번에는 꼭.....’이란 글자를 꾹꾹 눌러 적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