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남자가 그 광경을 본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세천유원지의 벚꽃은 시간의 흐름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얗게 흩날리는 나무 숲에서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듯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인 듯 보이는 여자가 나무기둥에 손을 대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아이들은 즐거운 놀이 속에 빠져 있었고 남자는 그 광경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잊고 있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습니다.
남자가 어릴 적에도 그랬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나무 기둥에 기댄 술래가 큰소리로 외치면 아이들은 그 틈바구니를 이용해 술래에게 다가갔습니다.
술래가 남자를 지목했습니다.
너 앞으로 나와!
남자는 조금 억울 했습니다. 다른 애들도 같이 움직였는데 자신만 지목했으니까요.
나갈까 말까. 친구 영석이는 아니라고 시치미를 뗐잖아. 나도 그렇게 할까?
그것은 참과 거짓의 경계였습니다.
몇초의 망설임이 지난 뒤 남자는 술래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니까요.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좀 이상합니다.
주위에는 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한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있으니까요.
남을 윽박지르고, 달콤한 말로 상대를 속이고, 앞과 뒤의 얼굴이 다른 사람들.
남자의 눈에만 그들이 보이는 걸까요?
나만 바보같이 살아온 건 아닌가 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훌훌 털자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사는 거고, 나는 나 대로 사는 거다.
오십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갑자기 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삶이란 무엇 일까요?
누군가는 버티고 견디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허허허,
남자는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사방이 흰색으로 둘러싸인 그곳에는 아이들에 웃음소리와 선생님에 목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