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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목소리
방송인 김경훈
2019. 3. 30. 09:15
아침에 눈을 뜨니 목이 따끔따끔하다.
밤새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었기에 목이 부은 것 같았다.
어제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는데.
낭패다. 오전 수업이 세 시간이나 있는데.
아아, 마이크 테스트처럼 소리를 내보지만 인조인간처럼 쇳 소리가 난다.
어제 일이 떠오른다.
학생들이 졸기에 재미 있게 해주려고 성대모사도 하고 혀짧은 사람 흉내도 내고 했었는데,
그게 독이 된 것 같다. 아, 나는 왜 주책스러울까.
아아, 다시 한 번 목소리를 가다듬지만 마찬가지다.
급한대로 소금 물로 가글을 하고 따뜻한 물을 마셔도 소용이 없다.
문득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가 생각난다.
공주는 왕자에 대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사악한 마녀와 거래를 했다.
예쁜 다리와 목소리를 바꾼 공주.
그녀는 목소리 대신 다리를 얻었다지만 나는 얻은 것도 없다.
부랴부랴 학교에 가니 문과대학 입구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시간은 계절을 만들고 계절은 늙음을 선사 한다더니 문득 내 나이가 실감된다.
그래도 예쁜 건 예쁜 거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감탄사를 지르지 않으면 죄악과 다름없다.
그러나 오늘은 감탄사도 나오지 않는다.
좁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은 소리 뿐이다.
목소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내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타인의 의사를 끝까지 듣는 걸까.
혹시 중간에 자르지는 않는 걸까.
컨디션은 엉망이지만 귀중한 것 하나를 얻었다.
앞으로 나는 벚꽃을 본다면 소중의 소중함이 생각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