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하는 아들에게
아들의 머리가 시원하다.
민둥산처럼 허전한 머리를 보니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온다.
아들이 며칠 후 군에 입대한다.
군에 가는 아들을 보며 문득 삼십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말을 했던가.
아마도 대문 앞에서 큰절을 할까 하다가 그냥 집을 나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버스를 타며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이제 사흘 남았다.
2018년 1월 22일 이후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도 맛있는 것을 먹거나, 멋진 경치를 보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마다 아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문득 아들이 태어나던 그때의 무겁고 습한 공기가 떠오른다.
유월의 어느 새벽이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잔뜩 대기에 내려와 있던 날, 아내의 진통이 찾아왔다.
우리는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병원의 문이 닫혀 있었다.
딩동딩동, 유리문 옆의 야간벨을 눌렀다.
한번, 두 번, 세번, 초조한 것은 우리였다.
출입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빨리요. 아기가 나오려고 해요.”
간호사는 이런 일은 수없이 겪어 봤다는 표정으로 시쿵둥했다.
그녀는 하품을 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원장님을 불러도 두 시간은 기다리셔야 돼요.”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왔다. 지금 아기가 나온다니까요. 빨리 원장을 불러달라고요.
내 목소리가 병원 입구를 쩌렁 울렸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아기는 금방 나오는 게 아니에요. 진통의 정도를 보니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요?"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아내의 입에선 낮은 신음이 쉴 새 없이 나왔다.
분만실의 불이켜지고 침대에 누운 아내가 안으로 들어간 뒤 나는 분만실 앞에 남겨졌다.
엄마에게 전화할까? 아니다. 장모님께 전화하자. 하지만 너무 일렀다. 지금 이 시간에 전화해서 뭐라고 한단 말인가.
그러는 동안에도 안에선 진통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분만실 앞에서 아내에게 소리쳤다.
“라마즈 호흡법을 해봐. 라마즈 호흡법.”
얼마나 지났을까.
늘 딱딱한 표정의 원장이 건조한 얼굴로 복도에 나타났다.
잘 부탁합니다.
나는 간절한 음성으로 원장에게 연거푸 절을 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고 한 시간쯤 지난 뒤, 원장이 밖으로 나왔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 처럼 아기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원장이 이상한 말을 했다.
"산모와 아기가 위험 한 것 같습니다."
불안했다. 아내가 위험하다니 어찌해야 되는가?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원장은 긴장된 표정으로 한시라도 빨리 손을 써야 된다고 종용했다.
그 순간 선배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개인병원은 돈을 벌기 위해서 수술을 시킨다더라.
그때 나는 큰 병원으로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던 것 같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자 원장이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들입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내가 지구의 중심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드디어 아버지가 되었구나.
그때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내가 태어났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지?
나는 작은 소리로 엄마, 라고 조용히 중얼 거렸다.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손수 만든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었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편지도 썼다.
그때마다 나는 감동했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그럴 수 있도록,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그 아이가 이제 군에 입대한다.
묵직한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기분이지만 이땅의 모든 부모가 겪어야 할 일이다.
"아들아, 낯선 환경은 누구나 두렵고 떨리는 법이란다.
그러나 부딪혀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 건강하게 잘 다녀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