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유람기
처음부터 무리한 결정이었을지 모른다.
살다 보면 때론 하지 않아야 되는 일도 하는 법인데 나에게는 제주도 유람이 그랬다.
'창조경영 3기원우회'에서 제주도 1박2일 워크숍을 가기로 했다.
워크 숍은 겉모습일 뿐이고 실상은 관광과 여행이었다.
원우들이 나에게 참여 의사를 물었을 때 나는 “반반”이라고 대답 했다.
내게 처해진 현실은 한가하게 여행이나 갈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참석은 내가 결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예약을 내 이름으로 했기에 천상 가야 할 팔자였다. 금요일 오전 강의가 문제였다.
학교의 방침상 휴강은 할 수 없다고 학교측은 단호히 거절했다.
관계자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사실 솔직보다는 약간의 거짓말도 보탰다. 당숙이 위급해서 다녀오는게 좋겠다고.
보강계획서를 제출하겠다고. 담당자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모든 것은 시기가 정해져 있는 거잖아요. 저는 아마 평생을 후회 할 지도 모릅니다. 돌아가신 아버님까지 동원했다.
아버님은 어제 제주도로 출발하셨어요. 명연기 때문인지 담당자의 허락이 떨어졌다.
출발하는 내게 아내는 결국 안해도 될 말을 던졌다. "당신 그러다 잘리는 거 아냐?"
2016년 11월 25일 아침 6시30분.
대전에서 네명이 유성월드컵 경기장에서 모이기로 했다.
5시에 일어나 간밤에 챙겨 놓은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출발한지 5분쯤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환경사업을 하며 같은 동네에 사는 김 대표였다.
"저 좀 픽업해 주시면 안 될까요?"
태워주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미리 연락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내 입에선 거짓 말이 흘러 나왔다. "아직 출발하지 않았으니까 그쪽으로 모시러 갈게요."
사람은 때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은 선행이 언젠간 큰 보상으로 돌아 올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도 가졌으리라.
김 대표의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이 정문 앞에 서 있다.
김 대표가 차에 오르며 오른쪽 라이트 하나가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제야 나는 왜 어두웠는지 이해가 되었다.
다른 사람은 알고 있지만 나만 모르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얘기 해 주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
이를테면 자동차 헤드라이트, 매연, 독선, 고집, 나는 잘 살고 있을까?
아침 6시30분.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하니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블랙야크 매장을 운영하는 박 대표와 식품사업을 하는 안 대표다.
안 대표는 우리모임의 홍일점이자 총무다.
청주 공항으로 이동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누구 차로 가야 하느냐 갈등했다.
내 차는 요즘 지상에 세워놓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청주공항에서 돌아올 때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얼마나 낭패겠는가.
내 차의 상태를 설명하고 안 대표의 차를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아침 7시30분.
대전에서 청주공항까지 50분이 걸렸다.
청주공항에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브라질에 8천200억 원의 수출 계약을 체결한 박 대표와 청주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 대표였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항공사 창구로 이동했다.
국제선과 달리 국내선은 절차가 간단했다.
신분증 하나만 있으면 통과다.
신분증을 내밀며 이름을 말하자 창구에 있던 여직원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왜 쳐다보는 것일까?
이게 뭐에요?
아뿔싸.
내가 내민 것은 신분증이 아니라 신용카드였다. 습관은 이렇게 무섭다.
검색대를 통과해 2번 게이트로 이동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 올게요.
안 대표가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화장실에 들어갔다.
비행기 타기 전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나도 뒤 따라 가고 싶었지만 누군가는 의자 위에 놓인 가방들을 지켜야 했다.
그때 내 눈에 명함 같은 것이 보였다.
의자 위에 얌전히 놓여 있던 그것은 명함이 아니라 주민등록증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이 사람 돌아올 때 신분증이 없으면 낭패를 당할 텐데 어쩌나?
나는 주민등록증에 붙어 있는 64년생 여자를 쳐다 보며 중얼 거렸다.
안내소에 놓고 갈게요. 나중에 찾아가세요.
여자가 탄 비행기는 떠났을 것이다.
안내소를 찾아갔다. 앉아 있는 여직원에게 주민등록증을 건네며 말했다.
"혹시 이곳에 있을지 모르니 안내 방송 한번 해 주실래요?"
아침 8시30분.
비행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행은 떨림과 설렘이라더니 흥분이 내몸을 관통했다.
비행기는 엄청난 굉음을 내며 한마리 새처럼 하늘로 날아 올랐다. 계속 계속 올라갔다.
한참 뒤, 비행기가 반듯해지며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등이 켜졌다.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이럴 수가! 엄청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눈부시게 하얀 구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와,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온통 백색이었다.
방송국을 그만 둔 날,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던 꿈을 꾸었다.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고 좋아하며 마음껏 날아다녔다.
아침 9시30분.
제주 공항에서 반가운 분과 만났다.
중소기업 대표인 경 회장님이다.
회장님은 김포공항에서 출발했고 제주 공항에서 우리와 합류했다.
이로써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대전에서 4명, 청주에서 2명, 제주에서 1명, 총7명이다.
예약해둔 콜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행사 직원에게 소개받은 택시기사였다.
차량을 제공하고 하루에 일당 팔만원이라고 했다.
그는 제주도의 가이드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1번 게이트로 나가자 기사가 우리 앞으로 12인승 스타렉스를 몰고 왔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며 반갑다는 말이 들렸다.
50대 후반쯤 되었을까.
개구리처럼 툭 튀어나온 눈 말고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였다.
80년대 영화에 나올 법한 7대3 가르마가 인상적이었다.
점심을 먹기에 좀 이른 시간이었다. 9시 50분. 기사가 섬머리 도두봉 공원에 우릴 내려줬다. 제주 바다를 먼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경치가 좋을 겁니다. 공원을 걸으며 갑자기 21년 전의 제주바다가 생각났다. 아내와 나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왔었다. 12월의 제주도는 바람이 매서웠다. 아내가 먼저 감기에 걸렸고 약속이라도 한 듯 나도 감기에 걸렸다. 4박5일 동안 우리는 두통과 미열에 시달렸다. 그래서 제주도에 관한 기억은 추위와 감기약을 먹은 것 밖에 없다. 나중에 돈 벌어서 다시 오자. 나는 일정을 포기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 약속이 언제 지켜질까. 도두봉 언덕위에 올라가자 눈 덮인 한라산이 보였다. 어서와! 여긴 제주도야.
공원을 내려오자 11시30분. 조금 이르게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 메뉴는 흙 돼지 삼겹살 괜찮으시죠? 기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식당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기사는 기업 형 식당이라고 말했다. 입구에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연예인은 물론 전직 대통령과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 폼을 잡고 서있었다. 아, 배가 고파서 그런지 고기 맛이 끝내줬다. 여기에서 흔히 먹던 돼지고기가 아니었다. 인분을 먹이며 키운 똥돼지가 이렇게 맛있다니? 그럼 다들 인분을 먹이며 키우면 될 거 아닌가. 어느새 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아예 똥통에 가두고 키우지.
식사를 끝내고 1층으로 내려오니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차들이 들어차 있었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기사가 건너편 식당도 흙 돼지 집이라고 말했다. 고개를 돌려 주자창을 바라보니 한산했다. 큰 비밀이라도 애기하듯 기사가 두 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와 저기는 친구사이였어요. 쇠고기만 팔던 여기 사장이 돼지고기 손님들을 앞집으로 보내주었죠. 그런데 저 집만 장사가 잘 되더랍니다. 나도 돼지고기를 팔아봐야 되겠다. 생각하고 돼지고기를 시작했고 지금은 여기만 북적거립니다. 이젠 원수사이가 되었다네요. 기사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기만 하는 사람은 고마운 것을 모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남이 잘 되면 뒤에서 씹고....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고.
차에 오르자 기사는 다음 목적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제주도는 오름이 360개, 산이 세 개입니다. 한라산, 송악산, 산방산이죠.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바로 송악산입니다. 그때 박 대표의 전화벨이 울렸다. 오전 회의는 잘 끝났죠. 구매는 어떻게 됐어요? 이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입찰 보는 날이니까 어제 그 가격으로 넣어요. 납품기일을 맞춰야 돼요. 원자재 가격이 올라서 걱정이예요. 전화기를 붙잡고 여행을 와서도 업무를 보고 있다. 그들과 달리 내 핸드폰은 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아무런 반응이 없다. 고장난 것이 아닐까 싶어 핸드폰을 꺼내봤다. 아, 그럼 그렇지. 나도 문자가 하나가 와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열어봤다. 김미영 팀장이었다. 대출 언제나 환영.
송악산으로 향하는 도로는 감귤농장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수확을 앞둔 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바닥으로 떨어진 귤들이 썩고 있었다. 기사가 다시 입을 연다. 옛날에는 귤나무 세 그루만 있어도 애들을 대학까지 보냈는데 지금은 인건비 뽑기도 힘들다네요. 한라 봉이나 황금 향으로 바꾸는 이유가 그겁니다. 문득 어릴 적 귤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행상을 다녀온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귤봉지를 보며 우리 형제들은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까먹던 귤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밖에는 눈이 내리고 엄마는 귤껍질을 까서 하나하나 우리에게 건네 주었다. 입속에 퍼지는 달콤함 맛을 음미하며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껍질을 버리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손등을 문질렀고 햇빛에 말려 차를 끓여 먹기도 했다.
1시30분에 송악산에 도착했다. 안내판을 보니 송악산 탐방로는 부남코지와 전망대를 돌아오는 두 시간 코스라고 적혀 있었다. 모두를 흥분시킬 만큼 멋진 풍경이었다.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보며 나중에 다시 아내와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다, 바람, 솔밭, 한가로이 풀을 뜯던 말의 모습을 절대로 잊지 않을 듯이 눈에 주워담았다.
3시40분. 송악산 탐방을 끝낸 우리에게 기사가 감귤체험 농장을 제안했다. 제주에 오면 꼭 한번 해봐야 하는 체험입니다. 10분쯤 이동해 감귤체험 농장이라고 쓰인 곳에 차를 세웠다. 사내 한명이 뛰어왔다. 농장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농민들이 세운 협동 농장이며 왼쪽은 감귤 밭이고 오른쪽은 산삼배양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이상했다. 여긴 감귤농장인데 왠 산삼배양근이란 말인가. 시간이 지나자 사내가 본색을 드러냈다. 손발저리고, 혈액순환 안 되고……기사에게 화가 났다. 이틀 동안 고비를 받기로 했으면서 우리를 약장수에게 데려 오나니 나쁜 인간이다. 한통에 10만원이란다. 미쳤지. 이걸 누가 사겠는가. 그런데 나갈 수가 없다. 해외여행을 가서 쇼핑센터에 들른 것과 똑 같았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제가 두 개 살 게요. 청주 정 대표였다. 하나는 아내에게 다른 하나는 아들에게 주겠단다. 참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니까.
농장을 나오니 4시30분이었다. 다음 목적지인 ‘환상 숲’으로 이동하며 기사에게 저녁식사 얘길 꺼냈다. 거래처 직원이 예약해준 고등어 횟집으로 갈 거예요. 그러자 기사가 투덜댔다. 거긴 숙소와 너무 멀단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사람이란 흔히 상대적 진실이란 게 있어서 얘기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있다. 감귤 체험농장이 약장사 인 것 처럼 자신이 원하는 식당으로 우릴 데려가기 위함이리라. 우리가 원하면 가는 거지 왜 틀어버려요. 언성이 높아지며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 회장님이 입을 열었다. 제주도 특산품 중에 오메기 떡이 있죠? 그걸 살게요. 한 개에 3만원이라고 들었는데 현금으로 30만원 드릴 테니 일곱 개는 우리 주시고 두 개는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남는 돈 3만원은 기사님 팁이에요. 순간 기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제주도에 오셨으면 고등어 회는 먹어 보셔야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회장님은 늘 곤란한 상황을 정리한다. 돈도 멋지게 쓸 줄 안다. 잘난 체 하지 않고, 폼을 잡지도 않으며, 공치사도 하지 않는다. 돈이란 이렇게 쓰는 거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4시30분에 ‘환상 숲’에 도착했다. 제주도 말로는 ‘곶자왈’이라 했다. 숲을 의미하는 ‘곶’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의 합성어다.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탄 곳이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방송을 타려고 하나보다. 구불구불한 돌길을 아마존처럼 울창한 밀림이 나타났다. 놀라 입이 쩍 벌어졌다. 숲에서 금방이라도 타잔과 치타가 나올 것 같았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나. 척박했던 땅을 일구어 5천원의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이 떠올랐다. 평범했던 가로수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상이나 했을까.
오후 6시에 고등어 횟집에 도착했다. 식당 이름이 독특했다. 한림바다 체험마을. 식당이 아니라 체험마을이란다. 고등어 회를 시키자 다양한 밑반찬이 나왔다. 묵은지 한 점, 알 밥 한 숟가락, 고등어 회 한 점을 김에 싸먹으니 고급 초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추가 메뉴로 ‘돌 광어’를 시켰다. 앞에 ‘돌’자가 붙어서인지 딱딱했다. 마치 홍어 뼈를 씹는 것 같아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회장님이 맛있다며 혼자 다 먹었다. 딱딱한데 괜찮을까. 얼마 전, 임플란트 12개를 끼워 넣은 내 친구 희구가 생각났다. 희구에게 내가 물었다. 가장 먹고 싶은 게 뭐냐고. 희구가 말했다. 총각김치를 먹고 싶어. 손에 들고 어그적 어그적. 희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총각김치를 먹는 것도 행복이구나.
식사를 끝내고 저녁 8시에 공항 근처에 있는 ‘용두암 캐빈’에 여장을 풀었다. 예약된 방은 두 개였다. 하나는 총무가 쓰기로 했고 나머지 여섯 명이 큰방으로 들어갔다. 방2, 거실1, 목욕탕1. 10명이 써도 될 만큼 넓었다. 환경사업을 하는 김 대표가 바닥에 눕자마자 코를 곯았다. 저녁식사를 하며 마신 술 때문이리라. 잠을 청하기 위해 나도 자리를 펴고 누웠지만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체질인데 웬일 일까. 아내의 모습과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이 번갈아 지나갔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김 대표의 코고는 소리와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아침 8시가 되자 기사가 우리 숙소로 찾아 왔다. 잘 주무셨어요. 해장을 하자며 1만5천 원짜리 전복 뚝배기 탕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맛이 개판이었다. 40점을 주기도 아까웠다. 맹물로 끓인 전복 뚝배기 탕이 아침부터 씁쓸하게 만들었다.
오전 10시에 우린 성산 일출봉에 도착했다. 찌푸려 있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행은 세 가지 복이 있어야 한다는데 날씨, 가이드, 일행 복이라고 하지만 우린 안타깝게도 두 가지 복이 없었다. 편의점에서 우의 하나씩 사서 산을 올랐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무척 많았다. 조금 오르다가 특이한 것 한 가지를 발견했다. 중국 사람들. 여기도 중국어, 저기도 중국어, 심지어는 안내방송도 중국어로 했다. 마치 중국에 온 기분이었다. 30분쯤 올라가자 정상이 나타났다. 꼭대기는 분화구 형태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올라올 때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어느덧 안개로 바뀌어 있었다. 안개비는 성산 일출봉을 집어 삼키며 제주 바다를 향해 움직였다. 안개비와 바다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일출봉에서 내려와 섭지코지로 이동했다. 시계의 초침은 11시를 넘어 있었다. 코의 끄트머리모양처럼 삐죽 튀어나온 지형이어서 섭지코지라 했다.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관광지였다. 해안가에 우뚝 솟은 바위와 기암괴석들이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여기도 중국사람 천지였다. 우리 앞에서 사진을 찍던 아가씨 무리에서 중국말이 튀어 나왔다. “이, 얼, 싼!”
점심식사는 ‘제주해녀 소라엄마’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12시 10분이었다. 간이 천막으로 쳐진 식당으로 들어가자 홀 중앙에 소라엄마처럼 보이는 해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저 사람이 소라 엄만가? 소라는 딸 이름일까. 전복 소라일까. 사진 옆에 해산물 모둠 3만원이라고 적혀 있었고 우린 모둠 두 개와 전복죽을 시켰다. 모둠 한 접시가 3만원이면 엄청 싼 거네요. 하지만 우린 접시를 보며 실망했다. 해삼 한 개, 멍게 한 개, 소라 한 개, 문어다리 한 개가 전부였다. 이걸 3만원이나 받다니 소라 엄마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전복죽 맛은 괜찮았다. 소라 엄마의 미움을 모두 상쇄 시킬 만큼.
점심식사를 끝내고 천안의 박 대표가 먼저 떠났다. 오늘이 아버님 생신이라서 가족들과 저녁식사가 있다고 말했다. 미련 때문이었을까. 택시 안에서 박 대표가 자꾸 뒤를 돌아봤다.
오후 2시에 우린 성산읍에 있는 ‘일출랜드’에 도착했다. 입장료가 9천원인 것을 보며 다들 한마디씩 했다. 너무 비싸다고. 하지만 나올 때는 다르게 말했다. 9천원을 받을 만 하군. 석회암 동굴, 아열대 식물원, 분재 화원, 화석, 선인장 온실까지 볼게 많았다.
오후 3시에 기사가 족욕 체험장에 우릴 내려줬다. 한 사람당 1만 2천원이며 새로 생긴 곳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주차장에 관광버스 두 대가 서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갔을까.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3번 방 앞으로 오세요. 안내원을 따라가자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다들 족욕체험을 하고 있었던 거다. 요즘은 여행 끝날 때 꼭 이런 코스를 넣더라고요. 총무의 말에 회장님이 받아친다. 피로를 풀어야 하니까요. 이건 돈을 많이 버는 사업 같네요. 따뜻한 물이 대야에 가득차며 족욕이 시작됐다. 여자 직원이 우리에게 뭔가를 설명했다. 아로마는 피로를 풀어주며, 박찬호 파스를 바르면 통증이 사라집니다. 족욕을 끝내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궁금했다. 만2천원 중에 기사는 얼마를 먹을까. 이런 것 때문에 제주도 전체가 욕을 먹는 것이다.
저녁 6시에 식당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타기전에 밥을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기사는 제주도에 와서 갈치조림을 꼭 먹어봐야 한다며 설레발을 쳤다. 식당은 공항근처에 있었다. 아, 식당은 2층이고 1층의 특산품 판매점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끝까지 우리를 돈으로 보는 것일까. 사람이란 단순한 동물이라서 한번 미워지기 시작하면 한 없이 밉게만 보이는 법이다. 아내에게 줄 작은 선물을 하나 샀다. 사면서도 아내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쓸데 없는 것 사지 말라고 했는데. 쇼핑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메뉴판을 보며 입이 쩍 벌어졌다. 이런 개같은 경우가! 통갈치 철판조림 한 상에 15만9천원이라고 써있었다. 16만 원짜리 갈치조림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여행 내내 침착했던 회장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우리가 원한 건 이런게 아니었잖아요. 길다란 철판에 갈치는 몇개 없고 가격이 싼 전복과 새우로 채워진 밥을 먹으며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기사가 차안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약속된 금액인 30만원을 줬다. 단 1원의 팁도 덤으로 주지 않았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까.
저녁 8시30분에 우리가 탄 비행기가 제주공항을 날아올랐다. 여행의 끝은 아쉬움이라더니 꼭 뭔가를 빠뜨리고 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서운해 하지 않기로 했다. 좋은 것과 멋진 풍경, 맛 있었던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눈을 감으니 햇살에 비치던 멋진 송악산의 앞바다와 섭지 코지의 절벽, 성산 일출봉의 안개가 떠올랐다. 언제 제주도에 다시 올까. 그때는 아내도 옆에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