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일기

홍도 흑산도 유람기 1


 

첫째 날, 2019817()

  귀를 찌르는 알람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시계는 2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4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서둘러야했다. 욕실에 들어가 대충 씻은 뒤 아내를 깨웠다. 늦지 않으려면 지금 일어나야 해. 병원에 계신 장모님 때문에 아내는 지난 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몇 시야? 두 시 오십분. 아내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욕실로 들어갔다아내는 살짝 건들면 금방이라도 슬픔이 쏟아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돼지회?" 아내는 매번 그렇게 물었다. 돼지회가 아니고 대지회라니까, 큰 뜻을 품을 사람들이란 뜻이야. 고등학교 동창 여덟 명으로 시작했지만 두 명이 빠지고 지금은 여섯 명으로 운영 되고 있었다. ‘홍도/흑산도 여행이야기는 지난 삼 월부터 나왔다. 부부동반이 좋겠어. 지난번 울릉도에도 함께 간 경험이 있잖아. 다를 부부동반에 이견은 없었다. 8월 셋 째 주말에 일박 이일. 딴 소리 하기 없기다. 회장 겸 총무인 내가 그렇게 못을 박았다. 술이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모른 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사정을 말하며 빠졌고 결국 여덟 명이 가는 반쪽짜리 여행이 되고 말았다.

  욕실에서 나온 아내의 표정이 어두웠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훨씬 심각했다. 아내는 준비를 하지 않고 침대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꼭 가야 되는 거냐고 나에게 묻고 싶은 얼굴이었다. 아내의 머릿속은 온통 욕실에서 넘어진 장모님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친정 엄마를 병원에 남겨 두고 혼자 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불효녀의 심정.




410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하니 친구 여(희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왜 혼자 왔냐고 묻자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 성순(여의 아내)씨가 다시 집으로 갔단다. 나는 누구 지갑을 안 가져 왔냐고 물었다. “내 지갑.” 어이가 없었다. “인마 그럼 네가 갔다 와야지 왜 성순 씨를 시켜.” 그러자 녀석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나는 너희들 기다려야 되잖아.” 나는 어쩐지 녀석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 왔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일을 벌이면 성순 씨가 뒷정리를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네 시가 조금 넘자 황(장연)과 지(봉섭)의 부부가 도착했다. 네 사람은 12인승 렌트 카로 같이 왔다. 우리는 지갑을 가지러 집에 간 여의 아내에게 전화해 유성으로 오지 말고 서대전 톨게이트로 오라고 말했다. 도마동에서 오니까 그편이 나을 것 같았다.

  목포까지는 세 시간이나 가야 하는 긴 거리였다. 문득 감독관 교육 때 승합차 뒷자리에 앉아 고생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승합차의 좋은 자리에 앉고 싶었다. 좋은 자리란 말을 하지 않아도 굳이 콕 집어 애기하지 않아도 알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나는 아내만이라도 좋은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후다닥, 나는 제일 먼저 짐이 실린 뒷자리로 탔다. 그리고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우리 집 사람은 좋은 자리에 앉게 해줘.” 라고 말했다. 거래는 성사 되었다. 한 사람의 희생과 한 사람의 편안함. 그럼 된 것 아닌가. 승합차가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마다 어지럽고 뱃속이 울렁거렸다.




705


  스타렉스는 세 시간을 달려 드디어 목포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새벽의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드물게 지나가는 승용차와 느리게 운행하는 화물트럭 뿐이었다. 일곱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태양은 벌써 정수리 위로 올라와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아침이었다. 승합차는 유료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하루에 1만원이란다. 우리는 차를 세운 뒤 짐을 내렸다. 유통사업을 하는 황(장연)이 준비한 짐들이다. 음료와 생수, 맥주, 소주, 과자와 안주류. 남자들이 짐을 하나씩 들었다. 근데 하필 내가 든 짐은 술이 담긴 아이스박스였다. 다시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누군가는 들어야 하니까. , 이번 여행은 마시지 않는 술을 하루 종일 들고 다녀야 할 팔자인가 보다.

  우리는 2층 대합실로 올라갔다. 누구를 만나라고 했더라?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번호부에서 서정표를 찾았다그는 이번 우리의 일정을 잡아준 관광회사의 대표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흑산도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한 사람당 21만 원, 여덟명 분의 168만원을 일주일 전에 송금 했다. 모든건 저한테 맡기시고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좀 이른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그는 전화를 받았다.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누구를 찾아야 하나요?”라고 묻자 그는 문자를 보내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곧 바로 문자가 왔다. ‘2층 중앙으로 가시면 우승여행사가 있을 겁니다. 거기서 나라 몰 투어라고 말씀하시고 오종환 님께 배표 받으세요.’ 마치 스파이 영화에 나오는 접선 같았다. 당사자는 오지 않고 문자로만 지시했다. 나는 짐을 들고 우승여행사라고 쓰인 배너 앞으로 갔다. 나라 몰 투어라고 말하자 중년남자는 홍도 행 배표 여덟 장을 줬다.

 “750분 출발이에요. 1번 개찰구로 나가시고 신분증은 미리 준비하셔야 해요.”

 그가 준 배표에는 각각의 이름과 생년 월일이 적여 있었다. 이제 떠나는 건가? 배표를 손에 쥐고 있으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는 준비한 멀미약을 꺼내 일행들에게 하나씩 나눠 줬다. 지난번 울릉도 여행 때 경험이 있어 이번엔 미리 준비 한 물품이다. 스틱으로 된 멀미약을 입으로 짜 넣었다. 잘 부탁한다. 속으로 말하고 있는데 때 여(희구)가 두툼한 비닐 봉투 두 개를 들고 왔다. 뭐냐고 내가 묻자 김밥이란다. 나는 여에게 말했다.

 "지금 멀미 약 먹었는데?"




750


  우리는 남해 프린스호에 탑승했다. 서정표씨가 일찍 예매 했기 때문인지 맨 앞자리였다. 전망이 좋아 홍도로 가는 동안 바다를 실컷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배가 움직였다. 우리를 태운 쾌속선이 목포를 떠나고 있었던 것이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도 저의 선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배는 홍도로 직접 들어 갈 예정이며 도착 시간은 1030분입니다. 승객여러분께서는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말고 안에서 여행을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였다. 그건 바다로 뛰어내리는 것과 같았다. 그때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액정에 올케 언니라고 떴다. 어두운 표정으로 전화를 받은 아내의 얼굴이 조금씩 환해졌다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장모님의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소식이었다. 무거운 갑옷을 벗은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배는 출렁거리지 않았다. 이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멀미가 나지 않을 거라고, 편안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웬 걸, 그건 나의 바람일 뿐이었다. 쾌속선이 섬과 사이의 협곡을 통과해 먼 바다로 나가자 배가 요동쳤다. 마치 바이킹을 타는 기분이었다. 앞부분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밑으로 떨어졌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파도를 몸으로 느끼는 것 외에는. 그때 어떤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매점으로 달려가 아저씨에게 물었다. “멀미에는 앞자리가 좋아요? 뒷자리가 좋아요?” 아저씨가 말했다. “이 사람아,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뒷자리지.” 나는 잽싸게 자리로 돌아가 아내를 일으켜 세웠다. “뒤로 갑시다. 멀미엔 뒤가 좋데.” 하지만 뒤에는 탈 때와 달리 빈자리가 없었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뒷북치는 인생이 괴롭지 않은가.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중간 자리에 앉았다. 이거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어? 조금 전 만났던 매점 아저씨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뒤에서 앞으로 다시 뒤로. 아저씨의 손에는 비닐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구원의 성자처럼 봉투를 내밀었다.

 “멀미 봉투예요, 받으세요.”

 나는 고통을 느끼며 계속 시계를 들여다봤다. 시간이 이렇게 더디게 흘러간 적이 있었을까.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고통은 좀 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꼭 감고 있었으니까. 나는 도저히 참기 어려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화장실 앞에는 엄청나게 긴 줄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1030

 

 두 시간 반쯤 달려가니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홍도다! 앞사람이 손으로 섬을 가리키며 일어났다. 우리는 그가 서있는 곳을 바라봤다. 바위가 붉어서 홍도라더니. 홍도는 온통 빨간색이었다. 섬이 반가운 이유는 '고통의 끝'을 암시하기 때문이었다. 쾌속선이 접안을 마치고 짐을 꾸리는데 아내가 까만색 비닐봉지를 챙겼다. 뭐냐고 묻자 김밥이란다. 목포에서 여(희구)가 준 우리 몫의 김밥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쓰레기통에 버려. 김밥 먹을 일은 없을 거야.

 섬에 발을 내딛자 멋진 풍경이 들어왔다. 쪽빛처럼 파란 하늘에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선착장 뒤편으로 붉은 절벽 보였다. 공기는 상쾌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나는 비로소 홍도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순간만큼은 나를 중심으로 지구가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상쾌하고 기분 좋은 공기. 멋진 광경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항구 이곳 저곳에서 숫자 세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둘, 셋, 착칵.

 흑산도의 '서정표에게 문자가 왔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들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어. 홍도의 미팅장소입니다. 여객 터미널 아래 7번 기둥에서 천사 횟집 사모님에게 식사와 관광 안내 받으시고 문제 있으면 제게 연락주세요.’ 우리는 짐을 들고 7번 기둥으로 갔다. 에이 포 용지에 내 이름을 쓴 여자가 서있었다. 50대 후반쯤 되었을까. 섬에 있기는 아까운 인물이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여자는 손을 들어 섬의 중턱을 가리켰다. 저기 천사식당보이죠? 1130분까지 오세요. 11시 30분이 되려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식당에서 기다리면 안 되겠냐고 물으니 안 된단다.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게 새벽 세시에 일어나 차 멀미하고 배 멀미하며 홍도까지 온 사람에게 할 말이란 말인가. 내색은 않았지만 다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깃대 봉을 다녀 오시든지 섬을 한 바퀴 돌아보세요.”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식당으로 가 문 앞에 짐을 부려 놓고 왼쪽 계단을 올라갔다. 홍도는 작은 섬이었다. 조금만 올라도 섬 전체가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바가파른 능선에서 바라본 바다는 한폭의 수채화 처럼 멋졌다. 칼로 두부처럼 잘라 놓은 듯한 주상절리가 뱀처럼 동쪽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냈다. 하지만 아내는 나와 달리 사진 찍기 싫단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나이가 들어서'라기 때문이라나.

 주름살이 보이잖아.






1130


 섬을 한 바퀴 돈 뒤 우리는 천사식당으로 들어갔다. 다른 일행이 먼저 식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자리는 그 뒤였다. 미역무침, 오이무침, 마늘종, 여러 밑반찬이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 몇 사람이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입속에 넣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걸 떡 거리지 말라고. 상차림이 끝나기 전까지는 젓가락을 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모든 것이 다 세팅 되었을 때 차린 사람과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그것이 예의란다. 아마도 엄마를 염두에 둔 말이 아니었을까. 구닥다리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배웠다. 메인 메뉴는 우럭매운탕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우럭 매운탕이 있었던가새벽 세 시에 일어나 아무 것도 먹지 않고(속에 있는 것을 꺼내기만 했다.) 홍도까지 왔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는가.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1230

 점심을 먹은 우리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 파도는 더 높아져 있었다. 쾌속선의 배 멀미가 떠올랐다. 밥까지 먹었으니 더 무서웠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홍도 여행의 백미는 유람선 관광이었기에 안 탈 수도 없었다. 멀미약을 사 먹어야 하는 걸까. 그것에 대해 천사식당의 주인여자는 명쾌하게 선을 그어 주었다. 먹지 않아도 된 다는 것이다.

 “쾌속선은 말이여. 사방이 막혀서 멀미가 심하지만 유람선은 괜찮여. 뚫려 있잖여.”

 나는 아줌마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녀의 주장은 경험에서 우러 나온 것이니까.



 유람선에 오르자 배가 출렁 거렸다. 파도가 심킬 듯이 배를 흔들었다.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쾌속선에서 비명을 지르던 여자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때 왠 남자가 마이크를 잡으며 말했다.

 “아따 말이지. 요딴 것은 파도가 아니라 물결이랑께죽지 않을 텐께 걱정 마쇼.”

 그는 다독거림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일그러졌던 얼굴들이 서서히 풀렸던 것이다. 자칭 홍도 오빠라는 남자는 유람선 가이드였고 그는 사람들을 안심시킴과 동시에 섬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때론 걸쭉한 농담을 곁들이는 그를 보며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는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대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처음과 달리 갑판에 있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쉬기 위해서다. 그 틈에 여유가 생겼다. 선상에서 멋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여러 개의 동굴과 기암 절벽, 그리고 붉은색의 바위들. 볼 수록 감탄사가 나왔다. 어느 덧 두 시간의 유람선 관광이 끝났고, 우리가 타고 있는 유람선 앞으로 고깃 배 한척이 다가왔다. 말로만 듣던 선상 횟집이었다. 우리는 삼 만 오천 원을 지불하고 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샀다. 회 맛은 놀라울 정도로 맛 있었다. 그리고 여덟 명의 젓가락 쟁탈전에 의해 금방 바닥났다. 언제나 그렇지만 부족함은 늘 여운은 남긴다. 더불어 내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맴돌았다. 분위기' 음식은 어디서 먹는가에 따라 맛이 다르다.



 유람선 관광을 끝낸 우리는 선착장에 내려 왼편의 해찬이네 집로 들어갔다. 길게 늘어선 횟집의 주인들이 해녀들이라고 했다. 사실 횟집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민망했는데 몽골 텐트를 치고 테이블 몇 개를 들여 놓은 간이 포장마차수준이었다. 우리는 해찬이네 에서 흑산도 행 배를 기다리며 삼만 원짜리 해산물 한 접시를 시켰다. 이미 배 위에서 회 맛을 보았기에 더 먹을 필요까진 없었지만 마땅히 앉아 있을 곳이 없어 취한 조치였다. 주인아줌마는 천사식당의 사장과 올케지간이란다. 나는 해산물을 기다리는 동안 '해찬이'는 아들일까? 손자일까? 생각하다가 쓸 떼 없는 상상은 공해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막걸리 값을 안받았다는데요?" 해찬이 할머니(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우리에게 막걸리 값 만원을 달라고 했다. 우리가 천사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시켰던 막걸리 값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돈을 건네며 내 뒷모습도 돌아 보았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1540

  흑산도 행 쾌속선에 올랐다. 동양고속 페리 호, 191번 자리였다. 다행히 뒤쪽이어서 멀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선장은 반대 방향은 멀미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선장의 말을 들으며 파도 위에서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나아가는 쾌속선을 떠올렸다.(지금도 어느방향이 역방향인지 모르겠다) 화장실에 다녀오며 매점 옆에 놓인 관광카트에서 신안군안내 책자를 꺼내 와 자리에 앉아 꼼꼼하게 읽었다. 안내책자에 의하면 신안군은 유인도와 무인도를 포함해 천 개가 되는데 그래서 천사의 섬으로 불린다고 나와 있었다. 그제야 홍도에서 밥을 먹은 식당이 왜 천사식당이었는지 그리고 왜 유독 천사라는 간판이 많은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600

흑산도는 홍도 보다 훨씬 큰 섬이었다.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절벽으로 이뤄진 홍도의 선착장과 달리 흑산도의 선착장은 거대한 규모였다. 야구공과 축구공의 차이라고 할까. 이번 일정을 잡아준 서정표씨를 선착장에서 만났다. 그는 눈에서 빛이 나오는 중년 남자였는데 갸름한 턱 선은 날카로운 성격을, 번들거리는 피부에서는 여유와 풍족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무뚝뚝한 남자로 기억한다. 전화 통화를 할 때 마다 그는 꼭 필요한 말만 했다. 그리고 용건이 끝나면 살가운 인사를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처음에는 오해를 했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친절하지 않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한 사람이지만 그는 전국을 상대로  영업을 했을 테니까. 그중에는 허풍쟁이도 있을 것이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나는 그가 낯선 곳에서 만난 동네 형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일단 버스를 타고 흑산도 일주를 하시고 그리고 저녁식사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미래관광이라고 쓰인 15인승 버스에 올랐다. 서정표 씨는 타지 않았다. 자신은 할 일이 있다며 우리보고 다녀오라는 것이다. 버스엔 열 명이 탔다. 우리 일행 여덟 명과 관계가 수상한 두 명의 관광객. 그들은 중년 남녀였는데 내 앞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일부러 그들의 대화를 들은 것은 아니었고 그냥 들렸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여기서 해경으로 근무 했잖아."

 그 한마디에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상상했다. 물론 그래봐야 달라질 것은 없다. 나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니까. 타인에 대한 관심을 끄는 것도 여행에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

 “흑산도는 말이여 잉, 주민 천삼백 명 중에 노인이 천명을 넘는당 께요. 전부 노인들인디. 나가 미혼인 것은 당연하지요. ,”

 가이드 겸 버스기사는 전라도 사투리가 심했다. 기사는 자신이 아직 미혼인 이유는 섬의 환경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그란디 문 옆에 계신 사장님은 엄청 차가워 보이시네요, ? 말을 붙이면 한 대 때릴 것 같으요.”

 버스기사가 황(장연)을 지목했다. 이런 방법은 행사전문 진행자들이 분위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한사람을 물고 늘어지면 분위기가 집중되니까. 황은 황당한 표정이었고 우리는 그런 황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버스는 열 두 굽이 길을 올라갔고 우리는 꼭대기에서 흑산도 아가씨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다 보며 서있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에서 사진을 찍었다.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이 전망대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빗방울이 떨어졌고 우리는 서둘러 버스로 돌아왔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내려오며 앞자리에 앉았던 중년 남녀를 만났다. 그들은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기야 웃어봐. 그렇지. 남자는 바다를 등지고 있었고 무척 어색했다.

 “아따, 참말로 요상한 날씨요. 오늘 비 온다는 소식은 읍썼는디.”

 버스기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417미터의 무남산 꼭대기에서 버스가 천천히 내려왔다. 비로 인해 도로는 미끄러웠다.

 “흑산도엔 다른 섬과 달리 물이 많아요. 섬 밑바닥이 암반이거든요. 지하수가 많아 댐이 있을 정도입니다.”

 기사는 비 때문에 긴장 한 것 같았다. 언덕을 내려오자 빗방울이 더 굵어졌다. 기사는 말을 멈추고 앞만 보고 달렸다. 더 이상 관광을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닫았다. 구슬만한 굵은 빗방울이 버스 앞 유리와 천장을 때렸다. 엄청난 소음과 함께 와이퍼가 사정없이 돌아갔다.

 “뭔 놈의 비가 이렇게 온다냐. 염병할

 기사의 말투는 관광 종료를 알리는 신호와 같았다. 우리가 탄 관광버스가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자 다섯 시가 넘어 있었다. 두 시간의 흑산도 버스일주를 비가 온다는 핑계로 한 시간 십분 만에 끝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항의할 사람은 없었다. 소나기가 와서 다들 불안했으니까.



 

'산행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전 빈계산 산행  (1) 2024.09.18
홍도 흑산도 유람기 2  (0) 2019.09.21
장령산 산행(3)  (0) 2014.10.27
장령산 산행(2)  (0) 2014.10.27
장령산 산행(1)  (0)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