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 없으세요?
언젠가 같이 일하던 후배가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일순 그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 그는 고개를 들어 옛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함께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었던가? 함께 이식했던 기억은? 내 생일을 챙겨주었던 적이 있었나? 다정한 목소리로 얘기를 나눈 적은? 기억의 서랍을 아무리 뒤적여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생각 할수록 기억의 중심에 무관심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몇 학년 몇 반이었는지, 반에서 몇 등을 하는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사귀는 여자가 있는지 아버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지 않은가. 가난한 형편에 형들이 거친 광야에서 고생을 하고 있어도 아버지의 관심은 딴데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중풍으로 자신의 몸을 추스리기도 벅찼을 테니까.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결혼후 분가를 하며 아버지에 향해 있던 안테나를 접었다.
- 너희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 번도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로 다가 왔을 때는 그는 충격을 받았다. 후회였다고나 할 까? 몸이 굳으면 염을 하기 어려우니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옆집에 살던 사람이 아버지를 끈으로 묶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옆집 사람과 그 뿐이었다. 그는 시신을 묶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의 몸을 봤다. 뼈 위에 가죽을 덧댄 것처럼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는 몸집이었다. 싸늘한 아버지의 몸은 나무토막 같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이분이 나의 아버지였던가?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불쌍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였을 것이다.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볍게 시작된 눈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서서히 굵어졌다. 뭔 눈이 이렇게 많이 온 담? 사람들은 눈 속을 뚫고 장례식장을 찾아왔고 어깨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문상을 했다. 그리고 난로를 켜놓은 천막 안에서 육개장을 먹은 뒤 돌아갔다. 그렇게 사흘동안 눈이 내렸다. 장례 버스는 눈발을 헤치며 임실 호국원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는 화장장에서 들고 온 아버지의 뼛가루가 실려 있었다. 아버지의 혼백을 그곳에 묻고 돌아오며 그는 버스 안에서 꿈을 꾸었다. 막걸리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 한잔을 먹은 뒤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 놓고 두 세시간쯤 다시 꺼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담배 한 갑과 막걸리 한 병.
아버지는 그것이 마치 목숨 줄이나 되는 것처럼 꼭 그만큼만 피우고 마셨다. 오늘 그는 막걸리와 담배를 준비 하지 않았다. 이젠 그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