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처럼 뜨거운 날이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했던 그날도,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식탁 앞에 앉아 신문을 읽었고, 신문을 읽은 뒤에는 아침을 먹으며, 고3 딸아이의 불평을 들었다. 우리 담임은 왜 야자를 빼주지 않는 거야? 아빠가 담임에게 전화해 주면 안돼?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야. 그는 딸아이의 얘기를 들으며 땡땡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담임 너무 미워하지 마라.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아빠는 내편을 안들고 누구 편을 드는 거야? 딸아이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심기가 불편 할 때 마다 보이는 행동이었다. 편이 어디 있겠니. 다 학생들 잘 되라고 그러는 거겠지. 그는 흥분한 딸아이를 진정시키며 어서 가라며 엘리베이터를 잡아주었다. 아이를 늦지 않게 보내는 그의 배려였다. 담임 선생님께 티내지 말고 고분 고분하게 굴어.
시계의 초침이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태양은 여지없이 아스팔트를 달구기 시작했고, 도시의 가로수는 작열하는 햇볕에 다시 늘어졌다. 오늘이 올 여름 들어 가장 더운 날이 될 겁니다. 라디오에선 폭염주의보와 일사병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는 여지없이 도서관에 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가방을 챙겨 열람실을 향해 걸어갔다. 4층에 자리를 잡고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전화의 경쾌한 음은 오래된 성채처럼 버티고 있던 고요를 깨뜨리며 칸막이 곳곳에 숨어 있던 고개들을 밀어 올렸다. 매너 없는 인간이 누구인지 기필코 확인 하고야 말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기지개를 켜다 날카로운 가구 모서리에 손등을 찢긴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한 채 후다닥 밖으로 뛰어 나갔다. 최동남 씨 보호자 되시죠? 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음을 전하는 간호사의 음성은 차분하고 침착했다. 편의점 종업원의 목소리처럼 건조하고 사무적이었다.
"조금전 7시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서둘러 병원으로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기에. 요양병원에 입원한 것이 이년 전이었고 그동안에도 여러차례 위험한 고비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전화를 끊은 뒤 그는 다시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며 아내에게 소식을 전한 뒤, 아들이 근무하는 부대의 중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육사 출신이라는 중대장은 예의 바르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바로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십분 쯤 지난 뒤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은 울먹이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요? 아들은 울고 있었다. 훌쩍거리는 울음은 그의 가슴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날카로은 꼬챙이가 심장을 찌른 느낌이었다. 아픔에, 고통에, 답답함에, 불공평하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아들 앞에선 울고 싶지 않았다. 대전에 도착하려면 세 시간은 걸릴 거예요. 그래,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서 와라. 전화를 끊은 뒤 그는 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얼었던 수도관에서 물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는 핸들에 고개를 묻었다. 그리고 그는 나즉히 중얼거렸다. 신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것은 문신처럼 가슴에 깊이 새겨져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문득 떠오른다. 부끄럽고 미안한 기억이다. 중학교 다닐 때였다. 그는 친구들과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이 차선의 좁은 도로에 들어섰을 때 그들의 앞에 고물을 실은 리어카가 보였다. 손수레에는 엄청난 양의 파지가 실려 있고 키작은 여자가 땀을 흘리며 끌고 가고 있었다. 신발 밑창이 바닥에 눌러 붙을 것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친구가 손수레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고물장수 여자다. 친구들이 손을 가리고 낄낄 거렸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웃을 수 없었다. 친구들이 비웃는 고물장수 여자는, 키작은 여자는, 리어카를 끌고 가는 여자는 바로 그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철봉을 하듯 매달려 있는 여자를 보며 그는 모욕감을 느꼈다. 왜? 저 사람이 나의 엄마란 말인가? 빨리 그 자리를 벗어 나고 싶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땅을 보며 걸으면서도 불안감이 들었다. 엄마가 자기를 알아보고 부를까봐. 엄마의 옆을 지나며 그는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며 그는 엄마를 거리로 내몬 아버지를 욕했다. 가난하고 능력없는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 뒤 거리에서 고물을 실은 리어카를 여러차례 봤지만 그때마다 그는 모른 척 지나쳤다. 아니다. 그는 무시했다. 한지붕 아래에 사는 엄마의 모든 것을 외면했다. 어둠이 내리는 골목으로 엄마가 지친 몸을 이끌고 와도 그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찌보면 식구들이 누리는 모든 것이 엄마의 고물장사 리어카에서 나왔는데도 그는 비웃었다. 그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비참하게 사느니 차라리 삐뚫어지는게 낫다 싶었다. 어려운 환경에 자식이 속이 깊고 예의가 발라버리면 안 될 것 같아 못된 친구들과 어울렸다.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며 어른 흉내를 냈다. 그러는 사이에도 상이용사인 그의 아버지는 전봇대를 걷어차며 비키라고 소리쳤다.
태양이 뜨고 달이 찼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담장 밑에 있는 잡초도,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도둑고양이도, 시간을 피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었다. 계절이 지나고 일년이 되었고, 일년이 십 년, 이십 년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엄마가 죽었다. 호강 한번 못해 보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장례를 치루며 그는 살아가는 동안 자신은 엄마에 관한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자주 하지 못한 것이, 밥을 자주 사주지 못한 것이, 고물을 실은 리어카를 밀어 드리지 못한 것이. 그의 엄마는 화장터의 불가마 속에서 한시간만에 사라졌다. 평생 엄마의 떠받들어 주던 육체는 몇줌의 가루가 되어 그의 손에 들려졌다. 그는 엄마의 뼛가루를 장령산 자락에 묻었다. 그날 밤 그의 꿈에 엄마가 나왔다.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엄마는 너 잘 되는 것만 바란다고.
꿈에서 깨어 난 뒤 그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특별한 날마다 한복을 입었던 엄마. 그 한복에선 흐미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그는 중학교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그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가 어느 장면에서 그의 영상이 멈췄다. 고물을 가득 실은 리어카였다. 땡볕 아래에서 엄마가 땀을 흘리며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발바닥이 데일 정도로 아스팔트가 뜨거웠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엄마에게 그때의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뒤에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천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시시하고 보잘 것 없던 엄마라 할지라도, 그런 사람도 다른 사람같이 아프고, 힘들고,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늦었지만 엄마의 리어카를 밀어 드리기로 한다. 그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 날의 상황을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돌린다. 수업을 끝낸 그가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무서운 속도로 차들이 질주하고 고물을 가득 실은 리어카가 그의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키작은 여자가 리어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여자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가방을 뒤로 매며 친구들에게 말한다. 저 분이 우리 엄마야!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엄마. 친구들의 동공이 커진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나의 엄마니까. 친구들에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고 말한 뒤 그는 리어카 뒤로 뛰어 간다. 그의 재빠른 동작에 여자는 알아채지 못한다. 그가 두 손에 힘을 준다. 묵직한 느낌이 전해진다. 힘의 분산에 여자가 뒤를 돌아보지만 높이 쌓여있는 고물 때문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자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이유를 알았다는 표정이다. 대지를 달구었던 태양은 어느새 산 뒤로 넘어가고 고물장사 리어카는 어둠이 내려 앉는 거리를 지나간다. 앞에는 키 작은 여자, 뒤에는 가방을 맨 아이가 밀고 있다. 아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아스팔트 위로 뚝, 떨어진다.